▲ 이하정 교무·네팔 포카라교당(논설위원)
교서상에서 도덕이란 용어가 제일 처음 등장하는 곳은 <정전> '개교의 동기'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러면 도덕이란 무엇인가 ?

소태산 대종사는 <대종경> 인도품 1,2장에 "~제일 큰 도는 우리의 본래 성품인 생멸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도이니, 이는 만법을 통일하며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여기에 근본하였으므로 이 도를 아는 사람은 가장 큰 도를 알았다 하나니라" 또한 덕이란 "~제일 큰 덕으로 말하면 곧 대도를 깨달은 사람으로서 능히 유무를 초월하고 생사를 해탈하며 인과에 통달하여 삼계화택에 헤매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한 가지 극락에 안주하게 하는 것이니~" 라고 하여, 생령을 구제하는데 가장 큰 벼릿줄로서 도와 덕을 꼽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 제자인 김영신과의 질의 문답(교의품 28)에서 "~ 사람이 육신 생활을 하는데에는 의식주가 중요하고 공부를 하는 데에는 수신이 중요하나니, 이는 곧 의식주나 수신이 생활과 공부의 근본이 되는 까닭이니라. -중략- 마음 닦는 공부를 주장하는 도가가 아니면 그 진경을 다 발휘하지 못할 것이니~" 라고 하였다. 이 질의 문답만으로도 우리는 소태산 대종사께서 법을 펴신 회상의 성격과 일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을 읽을 수 있다.

지금의 시대는 소태산께서 재세하셨던 때와 달라도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학교의 수신과목만으로는 부족하고, 마음 닦는 공부를 주장하는 도가라야 공부의 참다운 경지에 갈 수 있다고 한 부분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날 한국의 학교가 수신이라든지, 마음 공부라든지 하는 분야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닌 것으로 안다. 교육의 장이 교사의 권위를 상실하고, 또한 급변하는 시대의 경쟁에 투입되기 위한 효율적 인력을 양산하는데 발 맞춰 상업적 지식의 전달 장으로 변화한 것에 가슴 아파한 때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대의 병을 치유하는 일에 운명을 함께 하기로 한 재가 출가 교도들은 교단 백주년과 제3대 제3회말을 앞두고, 도덕부활과 인재양성이라는 명제를 두고 크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명제가 결국은 인류 구제의 열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임을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또한 종교를 포함한 문화적 정신적 가치가 없이는 앞으로의 경제 발전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미래학자들의 우려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물질적 풍요를 행해서 고장난 브레이크를 장착하고 달리는 자동차에 탄 승객들처럼, 달리는 이 차량의 종점이 어디인지를 알기 때문에 내심 두려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단 백주년을 앞두고 도덕부활과 인재양성이라는 명제를 대산종사께서 주셨다는 기원문 예문의 글귀를 풀기위해, 우리는 어떤 접근으로 해법을 만들어 갈 것인가를 속 깊이 그리고 광범위하게 연구하고 또 연구해야 한다.

수신의 참다운 경지를 얻기 위한 도가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그러한 도가의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수가 있는 것인지. 교통과 통신이 열려서, 물리적 거리감으로 인한 이별이라는 정서마저도 그 색깔이 달라진 것 같은 이 시대에, 마음 곳곳에 막혀있는 응어리와 찌꺼기들을 해소하고, 어떻게 하면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라는 이 게송을 뼛속 깊이 이해하고 실천해 갈 수 있을 것인지. 도덕부활을 위해서는 정교동심 달본명근의 실천과 제2, 제3의 법인 성사의 횃불을 밝혀야 한다. 아마도 그 길은 '극락암에 오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라는 선사의 공안처럼 우리 각자의 마음 마음에, 교단 구석 구석에 불꽃 튀는 법인 성사를 내포해야 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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