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년(三千年) 기다린 터 · 영산성지(靈山聖地) 2

▲ 원기 28년 박창기 선진에 의해 촬영된 대각지의 모습.
'노루목'
1916년(원기 원년) 4월28일 이른 아침.
26세의 청년 대종사가 오랜 구도 끝에 일원의 진리를 깨달은 곳이다.

노루의 목을 뜻하는 장항대각의 장소는 길용리에서 선진포로 가는 작은 오솔길에 위치하고 있다. 노루목을 넘어가는 작은 고개 윗부분에는 고인돌 2기와, 노루 머리에 해당하는 곳에는 수령이 수백 년에 이르는 팽나무와 느티나무 군락이 자리 잡고 있다.

소태산대종사가 대각 당시에 거처하던 집은 조그마한 초가삼간에 밤나무골을 향하여 지어진 남향집이었다고 한다. 집 앞으로는 구수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용암 마을과 영산성지고등학교를 경유하여 영촌 마을 쪽 탄생가 앞을 흘러 정관평 방언답의 보은강을 가로질러 와탄천을 지나 칠산 앞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다 반백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대각지에 대한 정비 작업을 하면서 흐르던 물길을 대각교 쪽으로 돌리고 집터 전면에 잔디광장이 들어서면서 대각지 옆의 샘물은 말라 버렸다.

원불교의 시원(始原)이었던 대각지였지만 원기28년 묵산 박창기 선진에 의해 촬영된 대각지의 모습은 수수밭이었다. 당시 민족이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형편이었고, 교단적 살림 형편도 궁핍했던 시절인지라 대종사의 대각터였던 성적지를 비롯한 여타 성지에 대한 정비와 장엄은 생각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후 대각지와 관련된 사진을 찾아보면 원기50년대 영산선원에 재직하던 교무들과 선원생들의 사진을 찾을 수 있다. 사진속의 대각지의 모습은 기단 부분에 큰 돌을 놓고 기단 위에 돌을 쌓아 만든 아담한 형태로 돌탑을 쌓아 천여래 만보살 회상의 시원지임을 알렸다.
▲ 최근 대각지. 중앙봉 자락의 소나무 숲이 우거졌다.
교단이 성장하면서 원기43년 무렵에 대각지와 소태산대종사 탄생가 부지 매입이 이루어졌고, 대종사 재세 당시 측근에서 모셨던 김형오 선진은 대종사의 대각을 기리고자 성적지에 대한 장엄을 하려고 하였으나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김형오 선진은 당시 한남동 수도원(정각사)에 계셨던 구타원 이공주 종사를 찾아가 대각지 장엄에 대한 사업 건의를 올리게 된다.

구타원 이공주종사는 초창기 간고한 살림의 교단이 재정적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희사만행으로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었는데, 대각지와 관련된 사업도 이공주 종사의 특별성금으로 원기56년(1971) 10월12일에 만고일월 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만고일월 비는 다섯 단의 기단 위에 2.1m 높이의 화강암 비신(碑身)을 세웠다. 전면에 있는 '만고일월(萬古日月)'의 글은 대종사 성비를 건립하던 원기38년(1953) 당시 정산종사께서 대종사에 대한 찬탄의 글이며, 서예가 강암 송성용(宋成鏞)의 글씨다.

만고일월의 뜻은 '대종사의 일원의 진리가 태양과 달처럼 무궁한 세월에 다함이 없다'라는 뜻이며, 후면에는 이 터를 기리는 내력이 적혀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圓紀 圓年 (一九一六年) 丙辰 三月 二十六日 이른 새벽 少太山 大宗師 이 터에서 大覺을 이루시다.' 圓紀 五十六年 九月一日.

대각지를 장엄하면서 찍은 사진속의 인물은 중앙에 이공주 종사와 우측 인물이 승산 김형오 선진, 좌측이
중산 정광훈 종사의 동생인 백산 정학현 교도이다.
▲ 사진 중앙 이공주 종사,왼쪽 정학현 교도, 오른쪽 김형오 선진.


만고일월 비를 세우고 이공주 종사는 제막식에서 대종사 전에 다음과 같은 고유문을 올린다.

대종사 대각기념비 제막식 고유문

원기56년 10월12일에 법제자 이공주는 재계하옵고 재가출가 모든 교단 동지와 함께 삼가 대종사님 성령 전에 고백하옵나이다.

오호라 스승님께옵서 구원겁래에 세우신 큰 서원과 적공으로 대각을 하시어 교문을 여신지 어언 반세기에 이르러 교단의 결실 성업을 기념하고 크옵신 은혜에 보은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대각기념비를 각(刻)하여 끊임없는 추모지성의 만일을 삼가 표하오니 대종사님 성령이시여 하감하시옵고 앞으로 영천영지 무궁한 세월에 만 생령의 끊임없는 찬송을 받으소서.

현재 영산성지는 서해안 고속도로의 개통과 더불어 주변 도로가 매우 빠르게 넓혀지고 있다. 또한 주 5일 근무제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영산성지를 경유하거나 방문하고 있다. 그러나 일원의 진리를 깨달으신 대각의 장소에는 넓은 잔디광장과 만고일월 비만 존재하고 일원의 진리를 형상화한 조형물은 없다.

앞으로 교단 백주년을 앞두고 대각지에 대한 많은 의견들이 오고 갈 것으로 보인다. 만고일월 비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 부분도 대중의 중지를 모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소태산대종사께서 깨달으셨던 그 장소에 그 옛날처럼 초가삼간이 다시 들어서고 집 앞으로 그 옛날의 물길이 다시 흐르기를 기대해 본다.

▲ 원기56년 대각비 축조 현장.
대산종사는 원기 백년에 환갑을 맞이하는 교무들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영산성지가 드러나면 원불교가 세계에 드러날 것'이라는 말씀이다.

다가오는 원기 100년.
원불교의 근원성지 영산.
그 중에서 대각의 장소인 대각지.

과연 오늘날 우리 후진들이 생각하고 있는 영산성지는 어떤 의미일까?
우리 모두가 회룡고조의 정신으로 근원을 다시 생각하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절이다.
<영산사무소>
▲ 대각지 정리 전의 표지모습

수령 수백년의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어우러진 노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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