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 지붕의 미학

한옥, 인공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 추구
지붕의 날아갈 듯한 선은 중압감 없어

▲ 창덕궁의 용두잡상.
한국건축의 가장 큰 인상은 지붕에 있다. 한옥에 대한 인상을 묻는 질문에 대한 가장 많은 대답이 지붕의 우아한 곡선이었다.

외국인들도 한옥은 하늘 위에 지붕만 떠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한옥의 이미지는 지붕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한국건축을 입면에서 바라보면 건물 몸체와 지붕이 거의 같은 높이이다. 평면에서는 건물 몸체보다 지붕 면적이 두 배는 넓다. 이는 처마가 많이 빠져나오고 경사 지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마는 태양의 남중고도와 관계가 있다.

중부지방을 기준으로 본다면 여름 하지 때 태양의 입사각은 76°를 이룬다. 이러한 입사각의 여름 태양빛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처마를 뺀다. 그 결과 처마 내밀기는 기둥 밑에서 처마 끝을 연결하는 연장선을 긋는다면 그 내각이 약 30° 정도를 이룬다. 처마의 길이는 기둥 높이에 따라서 다르다는 의미인데 빠진 길이로 본다면 1.2m, 1.5m, 1.8m가 가장 흔하고 큰 건물의 경우에는 2.4m 정도 빠진 것도 있다.

이처럼 처마를 많이 빼는 것은 처마 아래에 절대 그늘을 만들어 여름을 시원하게 나기 위해서이다. 한옥이 시원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처마를 많이 빼다보면 실내가 어두울 수 있다. 그래서 한옥은 마당에 떨어진 반사광을 역광으로 받아들이는 간접 채광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 각도에 맞춰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있어야 얼굴 그림자가 거꾸로 생기지 않아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불전 건물도 같은 원리이기 때문에 부처님도 고개를 약간 숙이고 계신다. 한옥은 이러한 간접 채광방식이기 때문에 마당에 잔디와 나무를 심지 않고 하얀 백토를 깔아 빛이 잘 반사되도록 한다. 또 기단을 높여 빛을 받아들이는 면적을 넓게 한다. 기단 높이는 구들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한국건축이 제일 높고, 중국이 다음이며 일본은 민가에서는 아예 기단이 없다. 그래서 한국건축이 가장 밝다. 밝은 집은 기거하는 사람의 마음도 밝게 하며 어린이들이 밝고 명랑하게 자라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붕이 이렇게 크고 육중하며 기와 색 또한 검은 색이어서 자칫하면 중압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한옥의 지붕을 보고 중압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그 이유는 지붕의 날아갈 듯 한 선 때문이다. 한옥은 지붕면도 곡선이다. 서양건축은 경사지붕을 사용해도 지붕면은 직선으로 내려온다. 같은 거리를 내려온다면 곡선보다는 직선이 단거리이기 때문에 빗물이 더 빨리 배수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는 곡선지붕이 빗물에 가속도를 주기 때문이다.
▲ 불국사 극락전의 팔작지붕 곡선.
한옥은 이와 같은 원리를 응용해 지붕면을 곡선으로 만들었다. 면이 곡선이다 보니 이러한 면들이 만나는 지붕의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가 모두 곡선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곡선도 동양 삼국이 모두 다르다. 재료와 구조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유는 민족마다의 미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에서 중국건축의 지붕을 보면 처마 선은 직선으로 가다가 양쪽 끝만 현격히 휘감아 올라갔으며 용마루는 직선을 사용해 매우 인공적인 맛이 난다. 그러나 우리는 용마루선도 처마선도 마치 빨랫줄 건 듯이 자연스런 곡선이다.

한국의 이러한 지붕곡선을 현수곡선이라고 한다. 현수곡선은 컴퍼스를 돌려 얻을 수 있는 인공곡선이 아니라 빨랫줄이 처지듯 지구의 만유인력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런 곡선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즉 한국건축은 인공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러한 곡선을 검고 육중한 지붕에 채택함으로써 지붕이 마치 날개를 접고 막 앉으려는 새처럼 가볍고 동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붕 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공력이 필요하다. 건물 중앙의 서까래는 곧은 것을 사용해도 되지만 양쪽 추녀 쪽으로 갈수록 굽은 서까래를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굽은 정도가 모두 다른 서까래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서까래만큼은 목수가 직접 상판에 가서 굽은 정도를 보고 나무를 선택했다.

한국건축의 지붕구조는 먼저 서까래를 얹고 서까래 사이는 판재 또는 싸리나무를 엮어 깐다. 지붕에 까는 판재를 개판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만 해도 판재 값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서민들은 사용할 수 없었다. 서민들은 대개 싸리나무를 엮어 까는데 이를 산자엮기라고 한다. 개판이나 산자엮기를 한 다음에는 통나무 등으로 서까래 뒤쪽을 눌러주는데 이를 적심이라고 한다. 적심 위에는 흙을 올리는데 이를 보토라고 한다. 보토의 두께는 지붕마다 차이가 있지만 충분하게 깔아준다. 큰 지붕의 보토가 두꺼운 곳은 1m에 이르기도 한다. 보토를 한 다음에는 알매흙을 깔고 암기와를 얹고 암기와 사이는 홍두께 흙을 깔고 수키와를 얹는다. 알매흙과 홍두께 흙은 진흙을 개서 만들며 기왓장이 붙어있도록 한다. 보토는 지붕 열을 차단하여 실내를 시원하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 습기가 많을 때는 머금고 있다가 건조하면 배출하는 습도 조절능력도 있다.

한옥이 쾌적한 이유는 지붕의 이러한 구조와 역할 때문이다. 기와는 또 옹기와 같이 빗물은 막아주고 통기성은 뛰어난 첨단소재이다. 빗물이 약간 누수 된다고 해도 보토가 머금고 있다가 건조하면 배출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따라서 지붕을 가볍게 한다고 무조건 보토를 걷어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보토를 얇게 하면 누수된 빗물을 머금고 있지 못해 서까래를 썩게 한다. 물론 단열효과도 반감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지붕과 기와는 무조건 빗물만 막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온도와 습도 조절능력과 함께 통기능력이 중요하다. 현대 재료는 방수능력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통기능력이 없기 때문에 실내 습기와 냄새를 배출하지 못해 여름에 눅눅하고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한국건축의 보토와 기와는 어수룩하고 소박해 보여도 그 속에 첨단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 김왕직 교수
명지대학교 건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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