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선원은 원기12년 주변 마을의 청소년 교육을 담당하기 위하여 영산학원을 발족한 것이 그 시원이다. 일제 말기의 압박과 해방, 한국전쟁과 제2차 방언공사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원기49년에야 교단의 교역자 양성기관으로서 영산선원이 발족되었다.

원기70년 영산·동산 양대 선원이 수학생의 감소로 운영이 어려워지고 전무출신 지원학력이 고졸이상으로 제한되자 통합하여 4년제 대학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제출되었다. 결국 동산선원을 영산선원으로 합하여 4년제 대학으로 바꾸고 동산선원은 초급교무 훈련기관으로 할 것을 원의회(제216회, 70.10.24.)에서 결의했다. 30년 전에도 선원체제의 변화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논의의 중심은 경영과 이념 실현의 문제였다. 경영의 문제는 궁촌 변지인 영산에 학생모집과 교수 초빙의 어려움, 교육재정 확보의 문제를 예견한 것이었고, 대종사를 비롯한 선진들의 창립정신을 이어받고 체질화하는 데는 영산성지가 적합하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좋은 시설과 교육 내용을 갖추면 경쟁력이 있다는 논리와 경륜사업의 추진에 힘입어 대학으로 바뀌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요즘, 학생 모집의 한계에 부딪친 영산선학대학교의 폐교 논의가 뜨겁다. 영산선학대학교는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로 단일화하고 대학원대학교를 영산으로 옮겨 익산과 영산을 모두 거치는 인재양성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안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그 동안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안을 마련했고 최종적으로 수위단회의 결정이 남았다"고 말했다. 영산선학대의 장석준교무는 "현재의 교육체제(익산·영산)를 유지하여 각각의 특성 있는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상호 조화롭고 보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인적, 물적 자원을 인재관리에 우선적으로 투자하자"고 주장한다. 문제는 전무출신 지원자의 숫자이다. 지원자 감소의 원인은 인구의 감소, 교화의 답보상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교역자에 대한 투자가 부족함으로써 교화의 부진으로 이어지고, 이는 교역자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져 지원자의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하는데 30년 앞을 예견하지 못했다. 교육기관 통폐합 여부는 옳고 그름을 떠나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결단의 문제이고, 결단에 대한 교단적 추진의지가 최대의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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