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온갖 책도
너에게 행복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허나 책은 남몰래
너를 자신 속으로 안내한다.
네 자신 속엔 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다.
태양도, 별도, 달도,
네가 찾던 빛은
네 자신 속에 살아있기에
네가 그처럼 오랫동안
수만의 책 속에서 구하던 예지는
시방 어떤 「페이지」에서도 빛나고 있다.
그것은 오직 네 것이니까.
-H.헷세-

귀뚜라미가 혼을 사루며 가을밤을 빚는다. 먼 들녘으로부터 벼이삭 부벼대는 소리가 파도소리로 들려온다. 알찬 수확을 약속하는 새로운 계절이다. 여름의 시체를 앞에 놓고, 나의 꿈을 연소시킬 연료를 준비해야 할, 이때만이라도 미소하고 천박한 나의 영혼을 살찌우고 싶다.
송대의 시인으로 소동파의 벗이였던 황산곡은 「사대부 3일을 책을 읽지 않으면 스스로 깨달은 언어 무매하고,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기가 또한 가증하다」
사실이지 나에게 있어 책이란 일상의 양식이요, 사상의 꽃밭이요, 지식의 보고였다. 물론 이를 꽃피우고 열매 맺게 함은 내가 그것을 어떻게 가꾸고 소화하느냐에 달렸겠지만 간혼 「사색이 없는 독서로, 책을 읽지 않은 사색으로」이와 같이 무가치한 섭취로 소화불량증에 걸린 적도 없지 않았다. 허무한 시간의 낭비요, 무지개 같은 공상이었다. 아마 잠재독자의 자격만으로 참 벗이 되지 못하여 영원과의 대화를 계속하지 못했던 탓이리라.
복잡다단한 일상성속에서 나는 나날의 일들로 잠시도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만들기가 힘들었다. 누구나가 그렇듯이 수많은 대인관계와 기계적인 업무에 시달리고 나면, 계획 있는 독서를 한다는 것은 어려워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하여 전혀 독서의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서의 「뜻」이 없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겠다. 하기야 참되게 책을 읽고, 참되게 인생을 사색하는 것은 빵을 위하여 하루 종일 땀을 흘리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있지만……. 독서란 시간의 부족보담 역시 성실성의 문제였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나는 매일 한 술의 밥이라도 끼니를 빼지 않듯이 의무적으로 하루에 한 줄의 글이라도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임어당」은 최량의 책은 독자를 명상적 기분으로 유도하는 것이지 신문관람 같은 사실보고는 독서가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그러나 가끔 고요히 책상과 마주 앉아 촛불을 켜놓고 (집중력이 강해 책읽기에 좋다)  고전의 삼매경에 몰입하여 유유자적의 독재를 즐기지 않는 바는 아니다. 人有入當中「독서당락」을 표어로 한가한 오락을 즐기느니 목적 있는 독서를 즐기기도 했었다. 그래서 독서란 나의 일상생활 중에서 가장 정력적인 생활방식의 하나였다. 마치 건전한 운동을 마치고 난 후와 같이 좋은 책은 내 영혼의 근육을 신축시킨 후 상쾌한 피곤감을 가져다주고 있다.
「앉아서 온 정신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었으니 나는 이 이익을 책에서 얻었다. 즉 한 잔의 물로써 황홀하게 도취할 수 있었으니 나는 이 기쁨을 절묘한 진리라는 술을 마셨을 때 맛보았다」(「밀?가말?우딘?마스트」)
여기에서 술이란 술이 아닌 진리이고, 그 진리란 인생의 의의와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고귀한 사상을 이름이요, 황홀하게 도취될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사상을 책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을 때의 통쾌무쌍한 기쁨을 말하는 것이다.
책 속에는 욕된 삶도, 아귀다툼도, 역겨운 흥정도 없다. 있다면 오직 환희와 희망과 보람이 있을 뿐이다.
「내가 만일에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된 시간을 말한다면 나는 아마 책에 귀착시킬 수밖에……. 좋은 책은 항상 무엇인가를 제공하면서 그러나 그 자신은 나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책은 내가 듣고 싶어할 때 말하여 주었고, 내가 피로를 느낄 때 침묵을 지켜주었다. 책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그 책을 읽어줄줄 아는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런 사람들은 결코 불행할 리 없다. 왜냐하면 이 땅위에서 가장 종고한 교제를 하고 있는데 그가 불행하다니 될 말이냐?」(「파울ㆍ에른스트」)
나는 책을 통하여 비로소 2천년전 「그리스」인의 신화를 들을 수 있었고, 대철「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심오한 사상을 배울 수 있었으며, 「로마」인들의 아릿다운 예술을 느낄 수 있었고, 戰地에서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늠름한 「알렉산더」를 볼 수 있었고, 도도한 황토의 「볼가」강 같은 「스라브」민족의 정신을 감지할 수도 있었다.
패배자에겐 희망을 주고 고독한 자에겐 좋은 벗이 될 수 있는 경전과 「참회록」, 「묵시록」등 수천년전의 성현을 모시면서 혹은 대문호의 작품을 한 장씩 넘기면서 어느덧 나의 내면세계는 기갈을 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저를 버려도 저는 결코 나를 저버리지 아니한 책, 항상 가까이에서 나의 알뜰한 반려자가 되어 주었으니, 어떠한 스승이, 또 어떠한 벗이, 어느 아내가, 이 같을 수 있었을까?
「閉門是卽深山 讀書隨處淨土」
(문을 닫으면 곧 심신이요, 책을 읽으니 어디나 불국정토더라.)
외롭고 쓸쓸할 때나, 목마르고 역겨울 때, 내 너를 부르니 따스한 체온이 옮아지네. 괴롭고 아플 때나 산란한 유혹이 나래를 펼 때 너는 나에게 의사가, 때로는 양약이 되데. 어둡고 답답할 때 내 너를 찾으니 마음의 행로가 빛처럼 열리데.
<원대학보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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