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게구름이 비늘구름으로 바뀌면서 내가 자란 산골에는 오미자 향내와 같이 가을이 더욱 가깝게 온다. 맨 먼저 홍단풍이 검은빛을 띄우면서 벚나무 가지에 병든 잎이 노랗게 달리면 청초스런 들국화가 피고 억새꽃이 허옇게 핀다. 어떤 꽃 어떤 풀에서 나는 향낸 줄도 모르고 나는 좋아하는 친우와 풀숲을 뒤지며 돌아다녔다. 어떤 향기건 어디서 나건 아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옆에 좋아하는 친우가 있고 그 향내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우리 둘의 마음은 갈리리 바다보다 더 푸르고 이태리 하늘보다 더욱 곱기만 했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말이 필요가 없었다. 돌아다니다 펑퍼짐한 바위라도 있으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배를 깔고 누워 얼굴에 긁겨매서 뽈긋거린 자국을 서로 보고 씨익 웃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자꾸 높아지는 하늘을 따라 우리 눈도, 몸도, 마음도 자꾸 올라가고 있었다. 가을볕에 송글거리는 땀을 오지랍으로 문질러내며 작년 가을 베어 넘긴 소나무가 거인의 시체처럼 누워져 있는 골짜구니로 기어오르면 자줏빛 산머루가 드레드레 달려있다.

둘이는 또 한 번 씨익 웃고 손을 올려 넝쿨을 잡아당긴다. 시큼한 맛도 보기 전에 입안엔 침이 가득 고여 또 한 번 쳐다보고 씨익 웃는다. 색깔이 고운 것부터 한 줌씩 훑어넣고 씨까지 으드득거리면 입가에 자주색 거품이 배어나온다. 어쩌다 떡분거라도 하나 씹히면 온갖 상을 찌푸리며 퇴퇴거리고 넝쿨을 잡고 기어 붙어 옛날 곰새끼 이야기를 생각하며 또 씨익 웃는다.

그러던 친구가 바람이 불어 달빛까지 흐린 날 저녁 나를 불러내었다. 뒷산 부잣집 무덤가에 등을 대고 누워있는 나에게 내일 서울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소문에 집을 팔고 이사를 간다는 소릴 들었으나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다.

눈물이 주욱 흘렀다. 반소매만 입은 우리는 이슬을 맞고 싸늘거렸을 텐데 날을 새웠다. 그리고 그는 떠나는 얼굴을 보이지 않고 서울로 떠나가 버렸다. 울고 갔는지 아니면 씨익 웃고 떠났는지 모른다. 그저 그가 떠났다는 사실이 내 옆에 비어있을 때 그가 밉기도 했다.

또 산머루가 익던 가을 서울 쪽을 보며 울지도 못하고 「바보자식 편지 한 장 쓸 시간 없이 바쁜가? 편지 한 장 보낼 여유가 없이 서울이 좋은가!」하고는 서 있었다.

그 다음 해 이제 산머루가 베짱이들의 노래로 좁쌀처럼 굵어질 때 나도 떠나고 말았다. 그가 떠나도 내가 떠나도 산머루는 익었을 거고 누군가 또 따서 자랑을 했을 것이다.

아직 산머루가 익기는 이른 늦여름 뜻밖에도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고향에서 부친다면서 보고 싶다고 했다. 놀란 것은 그가 서울서 한 번 죽으려고 했는데 죽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나는 정신병자처럼 무어라고 중얼거리며 기차를 타고 말았다. 그를 만나야 내가 살아 있을 것처럼 허둥댔다. 그는 없었다. 아는 사람에게 물으면 왔다는 소린 들었으나 어디 갔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바보 자식.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소리를 내여 울고 싶었다. 그는 죽었을런지도 모른다. 어딘가 살아있다면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산머루가 자줏빛으로 가을처럼 익는 시월이면 씨익 웃던 그 얼굴로 뛰어올 것만 같아 기다린다.

<원광대학 불교과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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