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최고 가치이며, 삶의 근본에 대한 해답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서 교회에 나가곤 하였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어머니의 정신세계에서 어느 정도 분리되고 독립된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교회에 나가는 것은 그만두게 되었다. 고등학교 대학에 진학하면서 인생의 철학적 의미와 식민지 치하에 놓여 있는 한국사회에 관한 사회과학적 구명 그리고 문자를 통한 미의 탐구에 보다 많은 관심이 쏠렸다.
한참 건방질 수 있는 20대 전후한 젊은이로서 나는 종교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식민지 통치를 받고 있다는 사실 이외에 절망하거나 안타까워할 심각한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종교에 매달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대학을 나와서 자기 생활에 자기가 책임을 지고 사는 동안에 사람에게는 인생에 대한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관념의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은 철학적인 이념으로 족할런지 모르지만 어쩐지 그것만 가지고는 만족할 수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무엇인가 종교적인 것이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러나 기성종교의 어느 하나에 몸을 맡길 생각은 나지 않았으며 더욱이 종교기관에서 직업적으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을 보면 종교를 믿을 생각은 나지 않았다.
위선적이면서 위선을 감추고 우리와 같은 죄인이고 우리와 같이 고민하면서도 자기 혼자 거룩한 체하고 신의 사도인양 「설교」하려는 태도가 비위에 맞지 않았다.
한편 사회학도로서 한국의 근대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다른 각도에서 종교는 극히 중요한 것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종교는 인간의 최고의 목표 가치에 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나라의 국민이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곧 그 나라의 발전에 직결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지배적인 종교가 없으며 내세적이라기보다 휠씬 현세적이라고 한다. 종교를 믿는 사람 자신들도 다분히 현세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한국에는 물질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종교적 요소는 별로 많지가 않으며 있다해도 심각하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민족적인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당장의 물질적 활동에 부정적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보다 더 물질적 발전을 촉진시키는 종교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 없는 것보다 좋다는 점에서, 또 종교가 없기 때문에 민족의 통합을 이루기가 어렵고 물적 가치를 넘어선 윤리적 가치를 몸에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건전한」 발전을 지속적으로 달성하는 것을 곤란케 하리라고 생각된다.
오늘날 나는 주로 두 가지 면에서 종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지금 바로 얘기한 국가의 발전을 위한 바탕으로서의 종교의 필요성이다. 하나는 과학과 기술은 인간의 물질적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겠지만 생의 근본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못해주며, 그를 위해서는 새로운 종교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관심이다.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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