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중의 격외선은 맹방 맹할
깨친 자의 무애행은 활살자재

 [25]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근래에 왕왕이 성리를 다루는 사람들이 말 없는 것으로만 해결을 지으려고 하는 수가 많으나 그것이 큰 병이라, 참으로 아는 사람은 그 자리가 원래 두미가 없는 자리지마는 두미를 분명하게 갈라낼 줄도 알고, 언어도가 끊어진 자리지마는 능히 언어로 형언할 줄도 아나니, 참을 아는 사람은 아무렇게 하더라도 아는 것이 나오고, 모르는 사람은 아무렇게 하여도 모르는 것이 나오나니라. 그러나, 또한 말 있는 것만으로 능사를 삼을 것도 아니니 불조들의 천경 만론은 마치 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나니다.」
 
 성리의 세계는 체에 치우친 경우도 있고, 용에 치우친 경우도 있다. 체와 용을 적절히 조화해야 원만한 성리가 된다. 과거 불가의 성리는 체용 병행을 강조하면서도 체에 치우친 경향이 강하고, 원불교의 성리는 체용 병행을 추구하면서도 용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 법문은 격외선과 맹방 맹할을 경계한 것이다. 이 법문이 나온 시대적인 상황을 보면, 한국의 불교계는 산중불교를 면치 못하고 있었고, 조선시대 말기 일제 초기라는 혼란한 시대에 진정한 수행인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불교의 중흥 조라는 경허성우 선사도 무애행을 많이 한 까닭에 깨침을 얻지 못한 승려들이 함부로 무애행을 흉내내었다. 깨친 사람의 무애행은 활산자재 대기대용 신통 묘용의 경지이지만, 깨치지 못한 사람의 무애행은 파계가 되고 죄업을 짓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의 법문에는 깨친 사람의 무애행을 찬탄한 것을 찾아보기 어렵고, 깨치지 못한 사람의 무애행을 경계한 것이 많이 보인다. 또한 당시의 불교는 말법시대에 비유되기도 해서 가승입산 진승하야란 말이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말법시대가 되면 가짜중은 산 속으로 들어가 거짓으로 수행하는 체 하고, 진짜 중은 현실 세상에 뛰어들어 중생제도에 힘쓰게 된다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가짜중의 격외선이나 맹방 맹할을 이 법문에서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원불교가 시대화ㆍ생활화ㆍ대중화를 표방한 것도 성리를 현실생활에 활용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깨치지 못한 사람이 함부로 격외선 도리를 말한다 하여 묵묵부답을 흉내내거나, 맹방 맹할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깨친 사람의 격외선이나 방ㆍ할은 성리의 체자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성리는 육근 동작을 통해서 나타낼 수 있는 것이므로 언어문자로도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불가에서 1700공안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선문염송>ㆍ<벽암록>ㆍ<송고집>ㆍ<무문관>ㆍ<경덕전등록>ㆍ<십현담>ㆍ<심우도>ㆍ<목우십도송>ㆍ<신심명>ㆍ<증도가>ㆍ<수심결>등의 각종 선서가 전해오는 것은 성리의 세계를 언어문자로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33조사 전법게송이나 수많은 오도송ㆍ열반송ㆍ선시 등도 하나같이 성리의 세계를 언어문자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리의 세계는 언어도단 심행처 멸한 경지라 하여 말없는 것으로만 해결하려 해서는 무기 공에 떨어진다. 언어문자로도 능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문자에만 집착하거나 속으면 조사선의 경지는 터득하지 못하고 의리선 여래 선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성리의 세계는 말을 해서도 안되고, 말이 없어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언어문자로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언어문자로도 능히 설명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깨치기만 하면 말이 없어도 맞고, 말은 해도 맞는 것이다. 그러나 깨치지 못하면 말을 해도 틀리고, 하지 않아도 틀리는 것이다.
 팔만 사천 법문이나 천경만론이 다만 허공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에 속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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