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당하면 외면이나 방어, 후회하는 일 많아

 연륜이 쌓이면서 내 자신에게 자비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사실 교화일선에서 베풀고 사는 일이 어찌 물질에만 있겠는가마는 정녀로 살다보니 마음 단속으로부터 몸가짐까지도 철저해야 하기 때문에 경계를 당하면 방어자세를 취하게 된다.
 어느 날 훤칠한 낯선 남자가 교당에 왔다. 인사를 한 후 자기는 전원배 교수를 잘 안다고 하면서 끝내는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전원배 교수님은 원광대 재학시절 철학과 윤리학 등 강의를 해 주신 은사님이었다.
 그 분의 해박한 지식은 학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한 어른을 내세워 돈을 꾸어 달라는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때 우리는 우선 방어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속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 그 사람의 정체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무조건 자비심으로 대 할 수는 없었다.
 불의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선심을 쓰는 것이 자비심은 아니다. 그러나 늘 방어에 신경을 쓰다보니 줄 자리에 주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도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당연히 베풀어야 할 경우에도 우리는 다 베풀지 못하고 있어 교화로까지 결실을 가꾸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그 낯선 사람에게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이 후회가 된다거나 잘못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단상에 올라 설교를 통해서는 온갖 금언옥설을 다 인용해서 성현들의 법문을 전달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나 스스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자비심은 없었던 것 같다.
 부산진 교당에 있을 때다. 밤무대에서 노래하는 직업을 가진 남자가 교당과 한 동네에 산다면서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매일 모인 대중들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마약에 손을 댔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비교화의 차원에서 그 사람이 앓고 있는 병맥을 치유해 주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두렵고 귀찮다는 생각이 앞서서 교당에 오는 것이 싫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 은생어해 해생어은의 인연이 될지 모르는데도 나는 털어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이리교당으로 나를 찾아 그 사람이 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좋아하는 작설차까지 사 가지고 왔는데 그 사람은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양심이 찔렸다. 그때 좀더 폭넓게 감싸주고 세정을 알아주었더라면 이 만남이 얼마나 떳떳했을까.
 지금 그 사람은 밤무대를 청산하고 건강을 회복해서 조그마한 상점을 운영한다고 했다. 건실한 사회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동안 설교나 상담을 통해서 해왔던 자비심이 미끈하게 포장된 허위의 자비심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는 경계에 부딪치면 외면해 버린 경우가 많았다. 앞을 내다보는 지혜나 사람을 이끌어 선도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자비심도 우러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능히 경계에 흔들리지 않고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힘이 있었다면 훨씬 후회하는 일이 적었을 것이다.
 이 모두가 지난날을 돌아보는 교화선상에서의 부족한 일들인 것이다. 어찌 완벽하기를 바라리요마는 큰 실수나 후회할 일은 적어도 번복하지 않아야 되겠다.
 그리고 교역자라면 언제 어디에서 있든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성석<교무ㆍ이리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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