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과의 만남
케냐 국법 이전의 원주민의 규율, 무서운 「거리의 정의」
위험 무릅쓰고 만난 소박한 그들, 아직은 휴화산

사진> 빈민가에서 노점상을 하는 원주민 여인과 아이들.
 아름답고 활기차 보이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한 구석에 비밀리 숨겨 놓은 것처럼 보였던 원주민들의 비참한 현장이 나를 강렬하게 잡아 당겼다. 나는 그곳에 있는 원주민들을 꼭 만나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켄코에 나의 방문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원주민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그 마름을 방문하려면 경찰에 신고해야 되고 경찰의 호위를 받아야 하며 자칫 불행을 자초할 수도 있는 모험이라고 했다. 그곳 원주민의 빈민가에는 케냐의 국법이전의 법이 있다고 했다. 「군중의 정의, 거리의 정의」란 그들만의 규율이 있어서 만약 그것에 어긋날 경우에는 몰매를 맞아 죽게 되고 경찰이 오기 전에 석유를 부려 시체마저도 태워 버린다고 했다. 그 빈민가에서는 하루에도 두 세명씩은 그렇게 죽어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겁나는 말을 해도 그곳을 방문하기로 한 내 뜻이 굽혀지지 않았다. 내가 만약 그 동네를 구경만 하고 돌아간다면 나는 아프리카의 겉만 보는 것이지 내면의 진실은 영원히 모를 것만 같았다. 나는 또 양영자 선생님께 그곳을 방문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양성생님은 한국식당 코리아나에서  일하고 있는 그 마을의 원주민인 두 청년들과 동행할 수 있게 주선이 됐다고 내게 알려 왔다.
 양 선생님이 손수 운전하여 우리와 함께 그곳에 갔다. 그분도 그 마을 안까지 들어가는 것은 내키지 않는 눈치였지만 나 혼자만 보낼 수가 없어서 동행하는 것 같았다.
 그 마을에는 집집마다 상수도도 없지만 하수도도 없어서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는 시궁창 물이 흥건히 흐르고 있었다. 길도 울퉁불퉁하기 이를 데 없어서 길도 헐고 낡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주민들이 골목마다 나오 앉아 있었다. 그들과 눈이 마주 칠 때면 나는 손을 모아 합장하고 머리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내편에서 웃는 낮으로 말을 건네곤 했다. 보디가드처럼 우리를 다르고 있는 두 젊은이에게 원주민들의 집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나는 몇몇 원주민의 집안까지 발을 들여놓았다. 그 마을의 집들은 방과 방 사이의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집마다 두부를 자르듯 그렇게 나뉘어 있었다. 서너 평쯤 돼 보이는 어둠침침한 그 공간은 온가족의 침실도 되고 식당도 되며 또 거실이기도 했다. 내가 처음 들어간 집은 어설픈 긴 나무의자가 있어서 거기에 나를 앉도록 권했다. 그 집 안주인은 탄식하듯 한숨을 쉬며 하소연했다. 남편이 며칠 전에 실직을 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면서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며 배가 고파 이렇게 보챈다고 했다. 딱하게 생각된 나는 당신이라도 나가서 아무 일이라도 부지런히 해보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아이를 맡길 데도 없거니와 먼 곳에 있는 마음 공동수도까지 가서 물통 놓고 기다렸다가 물을 받아다 밥지어 먹는 것이 자기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가봐도 돈이 될만한 일을 찾기도 어려운 노릇이라며 또 한숨을 지었다. 그네들은 물도 한 통 한 통 돈을 내며 사다 먹고 있었다.
 나는 방문했던 원주민들의 집을 나설 때마다 한달 지세가 될 만큼의 달러를 내놓고 나 왔다. 그들에겐 큰돈일 테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도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금액이다. 하도 두렵게 말했던 마을 방문이라 처음에는 잔뜩 긴장이 되었지만 정작 몇 집을 드나들다 보니 그들은 오히려 소박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어서 편안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리고 내 속마음에 저들을 해칠 마음이었는데 왜 저들이 나를 공연히 해칠 것인가?
 이들 원주민의 당, 케냐가 나라밖으로 얼굴을 들키기 이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이 아름다운 땅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며 살아왔으리라. 그러나 천혜의 미항 도시이고 케냐의 제2 도시인 몸바사를 아랍사람들과 포르투갈사람들이 번갈아 침입하고 급기야는 1907년경 영국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백인의 이민이 늘어났고 그들은 특히 기후조건이 좋은 나이로비에 정착하여 백인천국을 만들어 냈다. 1963년 독립은 쟁취하였으나 그간 밀리고 쫓긴 원주민들의 삶은 아직도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원주민들의 빈민가는 아프리카의 거대한 휴화산이 활화산으로 변하는 날 엄청난 화를 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늘의 강자인 백인과 그리고 일부 특권층이 누리고 있는 저 부귀와 영화는 과연 영원할 수 있을 것인가? 또 언제쯤에나 이곳 원주민들도 사람대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을는지…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은 이 지구촌의 심각한 문제의 무게를 그 현지에서 절실 느껴본다.
<교무ㆍ강남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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