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훔치면 법의 제재를 받고
진리를 훔치면 행복을 얻는다

 [26] 대종사 선원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가 이 가운데 허공법계를 완전히 자기 소유로 이전증명 낸 사람이 있느냐.」 대중이 묵연하여 답이 없는지라. 대종사 다시 말씀하시기를 「삼세의 모든 불보살들은 형상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허공법계를 다 자기 소유로 내는 데에 공을 들였으므로 형상 있는 천지만물도 자기의 소유로 수용하나, 범부와 중생들은 형상 있는 것만을 자기 소유로 내려고 탐착하므로 그것이 영구히 제 소유가 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아까운 세월만 허송하고 마나니, 이 어찌 허망한 일이 아니리요. 그러므로, 그대들은 형상 있는 물건만 소유하려고 허덕이지 말고 형상 없는 허공법계를 소유하는 데에 더욱 공을 들이라」

 여기서는 허공법계란 말과 소유란 말의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 허공법계란 허공이란 말과 법계란 말의 합성어이다. 사실은 허공, 법계, 허공법계가 같은 뜻이지만, 강조해서 허공법계란 말을 쓴다. 허공이란 텅 빈 공간, 하늘을 말하는 것으로, 청정자성 곧 성리를 비유해서 설명하는 말이다. 텅 빈 허공이 구름 한점 없이 맑고 깨끗하듯이, 우리의 청정자성에도 번뇌망상ㆍ사량계교ㆍ시기질투ㆍ삼독오욕이 없으므로 허공이라 하는 것이다. 법계란 현상세계의 근본이 되는 형상이 없는 진리의 세계를 말한다. 본체계는 우리의 마음이며 곧 허공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허공이나 법계는 같은 의미이다. 허공을 현상의 입장이 아니라 진리의 입장에서 강조하여 허공법계라고 한다. 허공처럼 텅 비었으면서도 일체의 법을 다 포함한 진리의 세계, 곧 우리의 청정자성심을 허공에 비유하여 허공법계란 말을 쓰는 것이다.
 여기서 소유한 자기가 갖고 있어서 사용권,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물을 말한다. 사람들은 법률적으로 소유등기를 낸 물질을 자기의 소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한다. 심지어 소유를 삶의 목적으로까지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다. 많이 소유하면 행복이요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연 소유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고, 행복과 성공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종교적 입장에서는 물질의 소유는 삶의 목적이 될 수도 없고, 행복과 성공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물질의 소유는 인간을 구속스럽게 하고 고통과 죄업을 가져오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라든가, 무소유와 청빈의 생활을 강조한다든가, 인생을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 등은 물질의 소유가 진정한 소유가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소유는 무엇인가? 허공법계를 소유한 사람, 곧 자기의 본래 마음을 발견하여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유라는 것이다. 물질 의 소유는 한계가 있다. 마음을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죄업을 짓게 된다. 그러나 성리를 깨쳐 허공법계를 소유한 사람은, 물질적으로는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지만, 이 세상에 소유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다.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은 법의 제재를 받는다. 그러나 진리를 훔친 사람은 혜복을 자유로 하는 것이다. 허공법계를 소유한 사람에게 이 세상 만물은 모두 자기의 소유가 된다.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일수타보 자무반전분」이란 말이 있다. 하루종일 남의 보배를 헤아려 보아도 자기의 손안에는 반푼도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추구해온 권력ㆍ명예ㆍ재물ㆍ가정 살림살이 등이 자기의 소유인줄로 믿고 살아간다. 그러나 막상 죽음을 눈앞에 두고 다시 냉철히 생각해보면 어느 것 하나도 자기의 소유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때서야 자신의 일생이 물거품 같고 안개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진정한 소유는 성리를 깨쳐 허공법계를 소유하여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 밖에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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