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 송혜환 선생
<약력>
○ 1905년 2월 12일 전북 진안 마령에서 출생.
○ 원기 10년 10월 16일 전음광 연원으로 입교.
○ 원기 17년 출가.
○ 원기 21년 서무부장.
○ 원기 30년 1월 25일 공산 법호 증여받음.
○ 원기 38년 보화당 이사. 6월 7일 수위단원에 피선.
○ 원기 41년 12월 6일 중앙총부에서 52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심.
○ 교단봉직 24년
○ 법훈: 대봉도
○ 성적 제1대내 공부: 예비 법강항마위, 사업: 정특등, 원성적: 정1등
△ 처세하는데 있어서 하나 하나의 실천으로써 대종사님의 법을 빛내다.
△ 언제나 교단과 더불어 이해를 같이 하고 동지와 더불어 슬픔과 괴로움을 같이하는 사람이 되자.
△ 공부와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신심으로 체를 삼고 공심으로 용을 삼아라. 신심으로 바탕을 삼지 않으면 간단이 있고 변화가 있어서 참다운 공심이 없게 되는 것이다.
△ 교단의 어려운 일 당했을 때 그 어려운 일에 없어서는 아니 될 사람이 되고 그 때에 그 일의 주인이 되고, 약한 동지에게 의지처가 되어주어라.
△ 우리는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은 될지언정 남에게 도움을 바라는 사람은 되지 말자.
△ 대종사님의 법을 말로만 드러내지 말고 행으로 빛내는 사람이 되라.
△ 일체 처사에 있어서는 언제나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하라.
△ 전무출신은 공을 위해서 나를 잊어버리는 것이 참 전무출신이다.
△ 내 앞길만 개척해 나가는 것보다 약한 사람 돌보아주고 살펴주어라.
□ 생애 □
일생을 사업계에서 언제나 고난과 싸우며 교단의 창설과 발전에 한결같은 노력으로 공도주의를 살리신 공산 송혜환 선생님!
어려서부터 천성이 착하고 정직하며 한 번 하기로 한 일에는 반드시 실행하는 백절불굴의 기개가 출가의 큰 뜻을 품게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28세 출가 이후 총부 서무부장으로부터 보화당 이사를 역임하기까지 24년 동안 복잡한 재물 가운데에서 생활하였으니 재물에 끌리는 바가 없었고, 선생님의 외유내강하신 덕성에 감화 받아 스스로 입교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영국인 후생 고문과도 선생님의 인격에 감화를 받아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두 분 계시니 영국에 친구 한 분과 한국에 송 선생님이다」하면서 모든 일에 협조를 하였으니 동화병원 신축금과 원광고등학교 악기구입 등이 그 실례이다.
선생님께서는 사업계에 계시므로 다른 동지들과 같이 강습 한 번도 제대로 나신 일이 없었지만 사리에 밝고 실행이 도저하시여 교화, 교육, 자선 등 많은 일을 하면서도 실수하는 일이 없었다.
출가 전에는 사치도 즐기는 편이었으나 출가 후 구인선배님의 정신을 언제나 되새기며 실천에 옭기는 생활을 하셨고 동지들의 괴로움과 슬픔을 당신의 괴로움과 슬픔으로 알아서 근심할 일은 동지의 앞에서 근심하고 즐거운 일은 동지의 뒤에서 즐기셨다.
선생님께서는 사가에 3~4년만에 한 번씩 가셨지만 사적으로 갈 때에는 반드시 집에서 왕복차비를 받아오셨다. 근검절약으로 공중 것을 아끼고 공금을 무섭게 알았으며, 출장 갈 경우 출장비를 절약하며, 쓰고 그 내역을 기재하여 잔액과 함께 회계에 반환하셨다 한다.
원만구족 지공무사를 좌우명 삼아 매사에 그 정신으로 임하였으며 보수적인 것 같으나 선을 넘지 아니하고 미급할지언정 과하지 않으며 공이 아니면 오지 않고 공이 아니면 먹지 않고 입지 않으며 울어도 공을 위하여 웃어도 공을 위하여 최후일각까지 오로지 교단의 발전에 심신을 다 바쳤다.
무아봉공의 검소한 생활과 공을 위하여 사를 잊고 법을 위하여 몸을 잊은 보살의 화현 공산 송혜환 선생님은 쉰 두 해를 마지막으로 고요히 잠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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