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경제관계는 기본자금이 9인 선배들이 손수 영광에서 간척한 토지에서 연 수입 약 2백석이고 기타는 신도들의 관혼상제 개혁으로 절약된 경비가 육영부로 또는 공익부로 통하여서 사회사업기금이 되어 가는 것이므로 하나도 반사회적이거나 불의의 착취제도가 내포된 사실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제3사상관계는 민족주의사상은 유할 것이 사실이나 현세 사상적으로 반일적 행동이 표현된 바가 없으니 이것을 탈잡을 도리는 더 두고 보아야 알 수 있는 일이고 소련과의 관계 유무에 대하여는 당시 총부 내에 소련에 거주하다가 귀국하여 바로 총부 내에 거주하던 독신자가 있었으므로 그로 관계하여 문제가 있었다. 신동기 씨라고 이공주씨 댁 뒤 사무실 가옥이 그 신씨의 집이었는데 신씨가 사업상 사정으로 그 집을 총부에 희사하고 이리농림학교 앞으로 이사, 정미소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련관계 운운은 그 신동기씨와 또 장적조씨라는 여자가 북선만주 근처로 다니면서 사방에다 일원상을 걸고 선전하고 다녔다. 그리하여 소련 공산당과의 연락 계통을 조사해 보라는 것이었으나 조사해보니 현재로는 아무런 단서가 없으니 계속 유심조사 하겠다는 것으로 그쳤다. 다음은 교리와 제도에 대하여 철저히 탐구하라는 재명령이다. 그리하여 당시 종사주와 처음으로 약속한 일이 있다.
 1937년 3월경이라고 생각된다.
 불초……종사님 제가 학복을 입고 당회에 들어온 것은 아실 테지만, 공부만이 아니고 철저
한 조사를 하기 위하여 들어 온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종사님께서는 그리 아시고 그대로 실행하여 나가시면 저는 저대로 철저히 조사하여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종사님과 저만이 알고 일반에게는 공포치 말아 주십시오.
 종사님……그리하겠소. 원래 법률과 종교는 서로 도와나가야 하는 것이오, 그러기에 국가정치의 법률은 엄격히 다스리는 것이고 종교는 자모의 성격으로 자비심으로 인도하여 나가는 것이요. 그러나 하나 당부할 말이 있소.
 불초……무슨 말씀입니까.
 종사님……당신이 그간 상종을 하여 보니 탁월한 재주가 있어 곧 우리 교리도 잘 이해할 줄은 아나 이 종교철학이라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니 우리의 교리와 제도를 모르고 다신 생각대로상부에 보고할 때 그 사실이 차질이 있을 때에는 곤란한 일이 있을 것이오, 그러니 당신 생각 그대로 보고를 하기 전에 교리나 제도문제를 나하고 한번 의견교환해서 보고하도록 해줄 수 있소?
 불초……그야 말씀을 안 하시더라도 이 교리나 제도에 모순점이 있다고 제가 생각될 시는 철저히 규명하기 위하여 종사님께 문의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걱정 마시오.
 종사님……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사회에 공헌을 목적으로 이 사업을 시작한 일이니 사회에 해독을 기치는 일이 된다면 그야 그날로 자진해서 그만두고 보따리를 싸야 할 것이 아니겠소.
 그러하니 당신도 하나도 걱정을 말고 철저히 조사하여 보시오. 이것이 곧 내일이니 이제는 내가 교도를 지도하여 나가는 데 힘이 많이 덜어지겠소.
 이상과 같은 약속 하에 시작되었다. 그 뒤로는 내 직책상 종사님 옆에 있으면 뭔지 모르게 마음이 평화 하였다.
 나는 그때부터 침식을 총부에서 일반과 같이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취사장은 그 전 종법실 동편이었고 남자식당은 종법실 앞 선방인 바 1인3시 당번을 정하여 식당으로부터 식사도구 일체를 나르면 노인실장이 죽비를 친 다음 각자 식탁에 대하는 것이었다. 이때 내가 큰 感心을 가진 것은 그 규율이다. 당번은 당번대로 불피(不避)풍우(風雨)하고 그 질서정연함과 또 밥이나 반찬이 부족한 형편인데도 될 수 있으면 타에 양보하고 불평 없이 화기애애한 그 모습은 일반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수개월을 주시하였으나 하나도 거짓 없는 실천행동으로 시종일관하였다. 진실로 당시 감동된 심정은 지금도 생각이 놓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하루는 종사주에게(그 무렵 종사주께서 친히 황가봉이라는 이름이 마땅치 못하니 이름을 하나 지어주겠다 하시면서 「二天」이라 하라고 일러주셨다) 무엇인가 알아보고 싶어서 몇 마디 여쭈어 보았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