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사한 佛法연구회 (6)
김남천 선생 공사 중 안일 유혹하는 마귀에 호령
종사주 어린아이들에게도 약속 철저히 지켜

 나는 당초는 무슨 일로 나오시다 다시 들어가시는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였던 바 별일도 아니고 과자를 가져다 아이들에게 나눠 주시는 것이었다.
이천: 종사님이 안으로 다시 들어가시기에 별일이나 있으신가 했더니 그 과자를 가지러 들어 가셨습니다그려.
종사주: 그리하였소.
이천: 아이들에게 과자 주는 일이 그리 급한 일이 아닌데 이 염천에 바쁘신 걸음을 하십니까.
종사주: 그게 대단한 일이지, 아이들에게 절하면 과자 준다고 말했으니.
이천: 그렇지만 차후에 주어도 될 것 아닙니까.
종사주: 이천이 공부를 하는데 이러한 점에 각별 주의해야 하는 것이오. 천진스러운 어린 아이들에게 추호도 거짓되이 행동하면 참으로 못쓰는 것이오. 안줘도 괜찮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나 그러면 아이들에게 신용을 잃게 되오. 그는 자기마음 한 구석에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는 불신의 씨가 생기어 信의 바탕이 무너지는 것이나 작은 일이라고 하여 관심을 소홀히 하는 것은 수도인으로서는 대 금물이니 적다하지 말고 관심을 꼭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오.
 그리하여 산업부로 가니라 하니, 현재 원광대학교 식당 근처에 다다르자 김남천 노인이 약초밭 제초작업을 하시다 『이놈 썩 물러가지 못하겠느냐』하고 큰소리로 호령을 두세 번 연 거푸 하고 있었다. 종사주와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있다가 송하로 들어서있을 때,
이천: 저 영감 노망기가 있는가보오.
종사주: 노망기가 아니고 까닭이 있는 말이니 저녁에 본인에게 물어 보시면 알게 될 것이오.
이천: 까닭은 무슨 까닭이 있단 말이요. 이 뜨거운 여름에 밭 가운데에서 아무 상대자도 없는데 이놈 저놈 호령하는 것이 무슨 까닭이 있겠소. 노망기지.
 산업부를 돌아보고 유념하였다가 그날 저녁 식사 때 남천노인에게 물어보았다.
이천: 남천 선생님 오늘 약초밭에서 누구를 보고 이놈저놈하고 호령하시었소.
남천: 그런 것이 아니오라 이 늙은 뼈다귀가 공사로 인하여 약초밭 제초를 하고 있노라니 마귀란 놈이 와서 나보고 「더우니 솔밭시원한 곳으로 가서 쉬자」고 자꾸 유혹을 합디다. 그래 나는 안 된다고 거절을 했더니 「아무도 보는 이가 없으니 괜찮다」고 자꾸 유혹을 하므로 그 놈을 내 마음에서 쫓아내느라고 생욕을 보았소.
 이 말을 듣고 참으로 공부하시는 분이요 마귀라는 존재가 이렇게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선방에 모친이 다니러 오시었다가 참선하신 일이 있다. 모친은 종래 불교에 독신하시었다. 그때 마침 불교에서는 흙으로 만든 등상불에 불공을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한다는 이유로 상당히 역설을 하신 분이 있었으니 부산에서 오신 정관음행씨었다. 그 말을 다 들으시고 난 종사님께서는 나의 모친에게 『말씀을 들으시니 어떠냐』고 물으시었다.
 모친 대답이 『부처님은 헛된 것이라 할지라도 공들이는 그 재물을 가지고 승려가 생활하고 공부하는 것이므로 공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도력이 높다하여도 열반하신 부처님의 도를 전하는 분은 승려이니 승려가 먹고 살아야 부처님의 도가 전하여지는 것이므로 불공하면 공은 되는 것이라』고 하시자 종사님께서 『그렇고 말고』하시면서 좋아하시었다.
 하선이 끝날 무렵 30세가량의 한 여인이 와서 「공부하러 왔다」고 하면서 하는 말을 들은 즉 그 교도는 옥구 임피 사람으로 청상과부 되어 아들 형제를 둔 바 장남은 농사를 일백 석 거리를 부치며 잘 살고 있고 며느리, 손자들도 효심이 지극하여 아무 걱정 없다하며 무슨 장황이 몇이고 머슴이 몇이고 하면서 경제나 환경이 만족하다는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아들이 만년에 농촌에서 고생마시고 편하게 불교당에 가서 계시라 하며 숙식비도 주고 갔다고 한 시간 가량 자람 삼아 얘기하고는 나갔다. 그 뒤 종사님께서 『이천이 얼마나 공부했는지 시험을 보아야겠다.』고 하시면서 『지금 그 부인이 공부 잘할 것 같은가』하고 물으셨다.
이천: 공부 잘하고말고요. 그런 환경에서 공부 못하고 누가 공부하겠습니까. 가사도 잊을 수 있고.
종사주: (웃으면서) 그러면 나하고 한 턱 내기할까.
 하시면서 그 사람은 공부 못한다는 것이었다. 두고 보면 불일간에 귀가할 것이니 두고 보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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