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상 개관
천주란 민간 신앙의 종교 사상이며
하느님은 전지전능하고 성실한 존재

동학의 교조, 수운 최제우(1824~ 1864)는 순조 24년 10월 28일에 지금의 경북 월성군 견곡면 구정리에서 출생했다. 제우라는 이름은 어리석은 세상 사람을 구제하려는 결심을 다짐하기 위해 스스로 고친 이름이다. 고치기 이전의 이름은 제선이오, 호는 수운제라 하고 관변기록엔 아명이 복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수운의 사상적 기반은 정통적인 주자학파의 민본적인 실천의 면을 붙잡고, 보다 그 실천을 행동화하려던 일파의 생각과 기독교적인 서학사상의 수용전개에 있어서 서학을 배격하던 반기독교적인 사상과서로 얽히어 정쟁을 거듭하던 사회적인 데에 발붙이고 있었다. 그는 논학(論學)문에서 「나는 역시 동쪽에서 나서 동쪽에서 도를 받았으므로 도는 비록 천도지만 학은 동학이다. 더욱이 땅이 동쪽과 서쪽으로 갈려 있는데 어떻게 서쪽을 동이라 하고 동쪽을 서라고 부르겠는가. 공자는 노(魯)에서 태어나 추(鄒)에서 교화를 이룩하였으므로 추노(鄒魯)의 학풍이 이 세상에 전해졌다. 내 도는 이 땅에서 받았으며 이 땅에서 펼 것이니 어찌 서학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라 하여, 자기의 학(學)을 동학(東學)이라 하였다. 수운은 1860년 4월 5일에 득도했는데 그 도가 천도(天道)이다. 천도란 「하느님의 가르침」이란 뜻이다. 수운은 서학과 자기의 가르침과의 관계를 「도는 같으나 이(理)는 같지 않다.」(논학문)고 했다. 그의 하느님(천주)이란 우리 민간신앙으로부터 발전된 종교적 사상이다. 그의 하느님은 전지전능하고 성실한 존재다. 그것은 성실하고 인간을 도와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격적이기도 하다. 그는 또 온 자연계를 다스리고 모든 생명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유일한 최고 존재다. 이러한 점에서는 다른 일신교적인 종교의 신과 같다. 그러나 수운 자신은 하느님을 직접 징험할 수 있다는 즉 「하느님을 모실 수 있다.」(시천주)는 사상은 서학과 다르다. 수운은 강령하여 시천주(侍天主)할 수 있는 신(身)적인 상태를 기화니 혹은 기화지신이 있다고 한다.
수운은 하느님을 위하는 지극한 마음과 아울러 하느님의 영기와 화합하는 신(身)적인 상태를 갖추려는 동적 태도가 곧 수심정기(守心正氣)다. 그는 수심정기로 시천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갖추고 있는 글이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라는 주문 21자라 한다. 이 주문을 통해 수심정기를 할 수 있고 이것을 통해 시천주 함으로써 하느님을 직증(直證)할 수 있다는 것이 수운의 신념이다. 결국 수운 사상의 중심은 시천주(하느님을 모신다.)에 있다고 보았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1827~ 1898)은 지금 경주 시내 황오리에서 태어났다. 초명은 경익(慶翊)이고 스스로 고친 이름은 시형(時亨)이다. 호는 해월이고 자는 경오(敬悟)라 한다. 그는 몰락양반의 아들로 태어나 잉ㄹ찌기 고아가 되어 조지(造紙)소에서 일하다가 1861년 동학에 입교, 북접의 대도주로 활약하다가 1863년 수운의 명을 받들어 2대 교주가 되었고 수운이 체포되어 대구 감영에 구금된 후 이듬해 처형되자 태백산에 은신, 그 후 관헌의 감시를 피해 안동· 평해· 울진 등지로 전전하며 정부의 탄압으로 흩어진 교도를 다시 규합하고 대원군 집정이 빚은 정치적 사회적 추세를 배경으로 민중에 접근하여 포교에 힘써 꺼져가는 동학의 명맥을 잊고 교세를 확장하였다.
해월은 직접적인 저술은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제자들이 남겨 놓은 기록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그의 중요한 법설을 살펴보면 사인여천, 시인접물, 용시용활, 향아설위, 이심치심, 천어, 삼경설, 이천식천 등이 있다.
해월은 수운의 시천주의 사상을 양천주(하느님 기른다.) 사상으로까지 발전시킨다. 해월이 전광무의 집에서 수운이 순도(殉道) 후 처음으로 설교한 내용에서 「나도 또한 오장이 있으므로 어찌 육욕을 모르리오마는 그러나 내가 이를 하지 않음은 하느님(천주)을 양(養)하기 위해서니라.」「이제 여러분을 보니 자존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것은 가탄할 일이로다. 나도 또한 육신이 있으므로 어찌 이런 마음이 없으리오마는 내가 이를 하지 않음은 하느님을 양(養)치 못할까 두려워함이니라.」「나는 어릴 적에 옛날 성인은 반드시 사람 이상의 무엇을 가졌으리라 생각하였더니 내 대신사를 쫓아 마음을 배운 후부터는 성인도 별 사람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정함에 있는 것을 알았노라. 마음을 정하면 곧 하느님을 양할 것이요. 하느님을 양하면 하느님과 사람이 둘이 아님을 알지니라.」라는 말이 보이는데 여기서 양천주의 양(養)은 시천주의 시(侍)의 확대 해석인 것이다. 그리하여 해월은 이것을 바탕으로 사람을 하느님과 같이 섬기라(事人如天)는 말을 기회 있을 적마다 강조하였다.
동학의 3대 교주 의암 손병희(1861~ 1921)는 동학을 천도교라 개칭한다. 천도교의 초기 사상의 경향을 살펴보면, 수운의 시천주라는 표현을 시천(侍天)으로 고치고 「인이시천(人以侍天)」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그 뜻을 「사람의 성(性)과 심(心)이 하늘에서 나왔다.」는 것으로 풀이하고 또 「인시천인(人是天人)」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그 뜻을 「사람은 하늘의 뜻을 받아가지고 나왔다.」는 것으로 풀이했다. 이러한 표어를 내걸게 된 이면에는 인간의 성(性)과 심(心)을 떠나 따로 하느님(천주)과 같은 어떤 의지적인 신이 없다는 것을 밝히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따라서 천주(天主)라는 표현을 피하고 천(天)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 천(天)을 어떤 천지 만물의 원리 또는 원소라고 이해한 듯하다. 천도교에서는 뒤에는 「인시천인(人是天人)」보다 진일보 한 「인내천(人乃天)」이란 사상으로 발전한다.
<부산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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