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부터 익혀온 보시심
마을사람들의 따뜻한 상담자
한정원 교무 어머니 이기선행 선생편 5
나눔의 삶
교당 법동지들과 법담 나누며 여가 즐겨
며느리 죽음이 가져온 충격으로 생기 잃어
 어느 때든지 우리 집에는 어머니 친구 분들이 많이 찾아 오셨다. 그러면 어머니는 있는 대로 맛이 있든 없든 푸짐하게 대접하셨다. 특히 동갑인 친구 분들과는 더욱 돈독한 정의로 인간사 고락을 법담으로 소화하시며 여가를 즐기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진 후에도 어머니 친구 분들은 나를 만나면 눈물을 글썽이며, 어머니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이난 비타원(정토회원)이 몇 달 동안의 투병 끝에 열반하고 말았다. 늦게 낳은 아들(인보)도 아들이었지만 늙으신 어머니를 뵈올 낯이 없었다. 정토회원은 원기 70년 8월 1일 백혈병이란 불치의 병마로 영영 먼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평소 비타원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는 어머니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하여 일들을 처리하는 효부였다. 그런 며느리의 죽음은 어머니에게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죽음 앞에 서글퍼 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마는 자식의 죽음에는 뼈를 깎는 듯한 아픔이 서리는 것이다. 비타원은 결혼하여 3년 동안은 부산은행에 근무했고 그 후로 열반 할 때까지는 한 지붕 아래서 온갖 고초를 함께 했기 때문에 며느리이기 이전에 딸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로부터 시름시름 소리 없이 앓기 시작했다. 안심 임명을 얻어 생사고락을 해탈하고 공부를 하신다고 하셨지만 너무나 큰 충격 때문에 말씀으로 표현은 하지 않으셨지만, 생기를 잃어버리신 것 같았다.
 그동안 교당을 통해 노인 대학원에 다니시며 배움의 시간을 가지셨고 기도일념의 신앙생활로 인간 삶의 애로를 극복해 오셨다. 그러나 며느리의 돌연한 죽으로 견디기 어려운 세월을 보내시게 되었다.
 우리 집은 그로부터 썰렁했다. 주부가 차지했던 자리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나는 우선 어머니의 시봉과 살림살이를 위해 가정부를 두었다. 어머니보다 약간 나이가 적은 분을 모셨지만 이 일도 여의 치는 않았다. 두서너 분이 교대로 집에 계셨지만 대부분이 아들과 손자가 있는 할머니들이었다. 그래서 낮에 일을 할 때는 별일이 없이 지내지만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면 그 노인들은 집 생각 때문에 우울해하면서 어머니에게 푸념을 했다.
 가뜩이나 며느리 잃은 어머니의 아픈 가슴에 돌을 던지는 결과가 되어 나는 그 노인들을 내보내고 젊은 가정부를 두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우리 집의 그대 형편은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불편함을 덜어드리는 것이 큰 과제였다. 아무도 없는 집에 어머니는 누워 계시고 아들 인보는 대학 재학 중이었으므로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이런 모든 것을 앍으신 대산 상사 님께서 나의 재혼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전무출신으로서 다시 결혼한다는 것이 마음에서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전무출신으로서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며 순리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비타원 열반 후 3년이 지나자 우리 가족들은 지치게 되었다. 처음 인보는 새엄마에 대해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더니 대학생이 되어 점차 성숙해 지면서 수긍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대산상사님의 은혜로 현재의 정토회원(안타원 최지현)을 맞이하게 되었고, 가정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게 되었다. 내가 더욱 재혼하는데 용기를 얻었던 것은 원로 정토회원님의 권유였다.
 이렇게 해서 안정을 되찾게 된 나는 어머니의 불편함에 대해 다소 죄송스러움을 덜 수 있게 되었다. 안타원은 충청도가 고향이지만 울산에 살면서 울산교당에서 오랫동안 주무역할을 한 신심 있는 교도였다.
 어머니는 끝까지 나를 위해 헌신해 주셨고, 우리 집으로 오신 뒤로 돌아가시는 날까지 고향으로 가시지 않고 나에게 마지막 효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여든 일곱의 세수로 열반하신 어머니는 그 많은 세월을 자신을 위한 삶이라기 보다는 자녀와 이웃 그리고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며 살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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