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산 농원
회상 최초로 禪 났던 곳
생산교화에 주력하고 농한기에는 교리훈련을

 이슬을 머금은 목탁소리가 어둠을 거두고 만생령을 잠에서 일깨운다.
심고와 좌선, 아침공부로부터 만덕산 농원의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지위나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며 편히 잘살기 위함도 아닌 오직 성불제중의 조촐한 서원일념으로 고된 일과 속에서도 오히려 공부심을 북돋우며 거칠은 음식과 불편한 환경 속에서도 낙도생활을 하고 있는 임원들을 대할 때 먼저 숙연해 진다. 전주 북부 배차장에서 부귀행 버스를 타고 동북쪽으로 한 시간쯤 달리면 진안, 완주, 임실 3개 군의 경계인 곰티재에 다다른다.
 곰티재 중턱에서 버스를 내려 오도재를 넘어서면 좌포로 연해진 넓은 계곡이 문 앞에 전개되고 계곡을 따라 1km쯤 내려가면 만덕산 농원이 자리 잡고 있다.
 원기7년 12월 대종사께서 최도화님의 앙청으로 오창건, 송도성 선생과 함께 만덕산에 오시어 田參參, 全飮光 선생 등을 만나셨고 육타원 이동진화 선생은 대종사를 만나려고 서울에서 가마를 타고 만덕산까지 오셨다 한다.
 만덕산 산제실은 원기9년 이 회상 최초로 선을 났던 곳이며 일찍이 정산종사께서 한동안 수양하셨던 곳으로 대산종법사께서 대종사님을 처음 만나신 곳이기도 하다.
 원기16년 원의회의 결정에 따라 50여 종보의 산을 매입하여 이준경, 이보국, 정일지 선생이 파견되어 임야를 관리해 왔으나 생산이 없는 적자운영과 산림관리의 어려운 점을 들어 팔아야 된다는 주장이 나올 만큼 어려운 운영을 해왔었다.
 현재 양원장과 김형모 총무, 이혜철, 김서학, 이성순씨 등이 희생 봉사하고 있으며 임야 58정보, 논 1천8백평, 밭 3천평과 법당을 마련함으로써 유지대책과 훈련장으로써 최소한의 면모는 갖추었다.
 원기52년에 신축한 법당은 박낙천 동전주지부장이 공사비를 전담하였고 지금도 법회날에는 하루도 빠지는 일이 없으며 교당운영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한다.
 금년 봄 양제승 원장이 부임한 뒤로 어려웠던 경제사정은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했다. 충산 선생께서 심으셨다는 2백여 그루의 감나무가 농원 창설 이래 처음으로 감이 주렁주렁 열렸고 논농사도 연례 없는 풍작으로 만덕산은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원기56년에 박낙천 지부장의 자금투자와 신석태씨의 기술지도로 시작했던 표고버섯 재배는 금년에 7천5백본에서 1백여만원의 수입을 올림으로써 밝은 전망을 보이고 있다.
 양원장은 『靈肉ㆍ全과 理事ㆍ行이 원불교의 특징인 만큼 튼튼한 경제적 기반과 완벽한 교화방침이 조화를 이룰 때 교단의 발전은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어 양원장은 『내년에는 날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표고버섯 재배를 3만본으로 확장하는 한편 재배하기 쉽고 수익성이 높은 감나무 단지조성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한다.
 현재 가장 큰 애로 중의 하나가 임원 부족이며 마을에서 농원에 이르는 도로작업과 식당채, 건조장 건립 등이 시급하다.
총부 유지기관으로서 기반을 다져가고 있는 만덕산 농원은 교단의 관심과 자체의 노력 속에 생산과 교화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농한기를 이용, 오는 12월 초부터 두 달 동안 임원들과 교도들의 교리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현재 농원과 병합되어 있는 중길선교소는 원기29년 좌포교당 연원으로 세워졌고 원기35년 지부로 승격되던 해에 6 ㆍ 25를 만나 안타깝게도 불타고 말았다. 
 그동안 교당 없는 설움을 겪어야 했던 교도들은 금년 봄 박지부장의 희사로 교당부지 2백평을 중길리에 마련하였고 2년 전부터 교당건축과 유지대책으로 재배를 시작한 인삼이 현재 8백여칸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박낙천 성생님께 물심양면으로 너무나 많은 부담을 드린 것 같다.』고 말하는 심흥선 지부장은 교당은 우리들의 힘으로 건립하겠다고 다짐한다.
 대종사께서 교당창립의 인연들을 만나셨고 선진들의 얼이 뭉친 이곳 만덕산 농원은 교단의 역사와 함께 길이 빛날 것이다. <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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