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사한 佛法연구회 (9)
가정불화를 호소하며 예배드려
서울에서 生부처님 찾아온 여인

 나는(池歡善) 남자만 귀국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바 그 남자는 동경에서 공부를 착실히 한 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동경에서 다른 여성과 재혼하여 아이까지 낳았다고 합니다. 다음에 그는 평양으로 건너와 단란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늦게야 들은 나는 화가 치밀어 살 수가 없었습니다. 홧김에 평양에 쫓아가 그 집에 가서 가재도구를 산산이 다 두들겨 부셔버리곤 하기를 수차 했는데 쫓아가면 벌써 그 사람들은 도망쳐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도 연거푸 하니 나는 실증이 날 정도인데 상대자는 어떻겠습니까. 그래 나는 가만두고 마음 둘 곳이 없어 재산이 있으니 부모에게 돈을 얻어 날마다 시내 구경이나 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4월, 석존탄일에 관등하러 절엘 갔더니 모인 중에서 「전라도에 생부처님이 생겨났다.」는 소문이 많았습니다. 나는 지체 없이 그 이튿날 길을 떠났습니다. 그 생부처님을 보고 내일을 호소하여 볼 생각으로 정처 없이 서울을 떠났던 것입니다.
 내 생전 처음 전라도 행이었습니다. 어떻게 온지도 모르게 우연히 불법연구회에 처음 당도했습니다. 처음으로 뵈 온 종사님은 내 마음에 틀림없는 생부처님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예배 후 나는 소원을 하소연했습니다. 그랬더니 종사님 말씀이 『참 잘 찾아왔다.』고 하시면서 『당신이 한 남자의 아내로 결정이 되면 무척 편하고 평화로운 생활이 이상대로 될 것 같이 생각했으나 그런 것은 아니오. 그러니 그렇게 한 가정 주부생활로 그치지 말고 이 대중생활에 협력하여 착실히 공부하면 오히려 인간락보다도 천상락을 누릴 수 있을 것이오. 남편이 현재 취처를 하여 자녀를 두었다하니 그게 다 결국은 당신자녀가 될 것이니 그렇게 미워하지 말고 「내가 할 고생을 그대가 한다.」하고 마음을 돌려 대하게 되면 전체가 다 평화로운 낙원으로 변해 갈 것이오. 그때에는 내 말이 옳다 생각되어 당신은 무상락을 누리게 될 것이니 그리 해 보시오.』하시는 법설을 듣고 그대로 마음고칠 것을 종사님께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수일 후 평양에 가서 보니 내가 오는 것을 보고 그 남자는 혼비백산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찾아가 위무하고 『그간은 내가 다 잘못했으니 그리 알고 자녀들도 착실히 기르고 안심하고 살라.』하면서 어린애들도 업어주고 하면서 여러 날 머물렀다가 돌아 왔습니다. 그랬더니 내 자신 마음도 편안하고 그 사람들도 안심하여 그 연유를 물어 왔습니다. 나는 종사님께 교화를 받았다고 하였더니 그들도 총부에까지 다녀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독실이 신봉하게 되고 현재도 매월 남자가 3십원, 여자는 생활비를 절약하여 5원씩 3십5원을 꼭 보내왔습니다. 나는 태평하게 이 총부에서 좋은 말씀이나 듣고 내 자신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호리지차(毫釐之差)로 千里之差라는 말과 같이 결과는 종사님의 덕화로 몇 사람이 평화로 이끌어진 것이 아닌가 감탄할 따름이었다.
 나는 한문을 배우겠다고 하였더니 그러면 「대학」을 배워보라고 하시면서 별로 배울 것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대학은 류허일 선생이나 송도성 선생에게 배웠다. 세상에서 사서라면 대단히 어려운 학문으로 생각하고 웬만한 사람은 배우지 못하는 책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막상 놓고 보니 당돌한 말이나 과연 별로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대학을 배울 때 「明明德」 이란 뜻에 대하여는 종사님께서 해석해 주시었다.
 약 일주일 후는 중용, 약 십오일 후 논어를 시작하였다.
논어는 그야말로 어론이라 조금 복잡한 생각이 났다. 논어를 배우던 중 「主忠信하며 無友不知己者요, 過則勿憚改 하라」는 구절에서 류선생에게 나는 반문을 하였다. 그 이유인 즉 자기만 못한 자를 벗하지 말라며 하는 구절이다.
 류선생도 그저 구절 문자 그대로 해석하실 뿐 마음에 쾌한 해석이 없었다.
공자가 성인이어늘 사람이 어찌 꼭 자기보다 나은 사람하고만 교제하고 자기만 못한 사람하고 벗을 하지 말란 말은 편벽될 말이 아닌가 하고 의심이 났다. 그래 류선생하고 말씀 도중 옆에 계시던 종사님께서 해명을 하여 주셨다.
종사주: 허일 그 뒤 잔주를 잘 살펴보시오.
류허일: 뒤 해에도 별다른 해명이 없습니다.
종사주: 그것은 이천이 묻는 말이 옳소. 그러나 그것은 필시 공자가 당시 제자 중에 꼭 자기만 못한 사람하고만 교제하는 성질이 있어 그 사람에게 원만하고 발전성 있는 교제를 권하기 위한 가르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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