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 출가· 선진· 후진의 혼연 일체

금년이 반백년 성업 완성의 해임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3월 28일부터 30일까지 성업 수행의 방법을 의논하기 위한 여러 가지 모임이 있었다.
3월 28일에는 수위단회와 교정위원회, 29일에는 중앙교의회와 반백년사업회 위원총회, 30일에는 육영재단 이사회, 법은재단 이사회, 감찰위원회 등이 열렸다.
특히 이번의 각종 회의는 교단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반백년 성업수행이란 역사적 과업을 앞두고 전 교단의 뜻이 한 곳으로 집중도고 힘이 뭉쳐야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재가· 출가· 선진· 후진의 모든 형제들은 가장 성실한 자세로서 뜻을 합하고 힘을 뭉쳤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교단의 밝은 앞날을 기약할 수 있고, 자랑스런 유산을 후진들에게 전해줄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두가 대종사님의 크신 뜻을 더욱 살리고 실천해 나가는 일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단의 영원한 발전을 위해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그것은 교단의 슬기를 모은다는 것과, 전 교단이 일심합력한다는 문제다.
민주주의는 대중의 뜻을 종합하는데 좋은 점이 있다. 창립당시부터 우리 교단은 민주적인 방식에 의해서 운영해왔고, 따라서 전교우의 뜻을 집약해서 교정에 반영해왔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각종회의가 자칫 형식적인데나 독단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서는 안 되겠다. 민주주의가 아무리 좋은 것이지만 우매한 다수의 횡포에 떨어질 우려성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민심을 천심이란 말을 우리는 진리로 받아드릴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조작된 민심이 난무하거나, 정상배에 조종된 방향 없는 민심도 얼마든지 보아왔다.
반백년 기념성업과 무궁한 장래를 위해서 우리는 전 교단의 진정하고 현명한 슬기를 모은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잠시라도 잊어선 안 되겠다. 슬기는 선진만이 가진 것이 아니요, 고위층만의 독점물도 아니다. 학생에게도 이름 없는 재가교우에게도 슬기는 있다.
일심합력은 창립정신의 하나였다. 지금은 창립 당시에 못지 않게 일심합력이 요청되는 때이다.
재가· 출가· 선진· 후진이 혼연 일체되어 일심합력 해야 할 때인 것이다.
출가라 해서, 선진이라 해서, 고위층이라 해서 내 힘이면 다 된다는 고집은 있을 수 없다. 재가라 해서, 후진이라 해서, 이름 없다 해서 되어 가는 모습이나 구경하자는 무관심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모두가 혼연일체 되어야만 우리는 반백년 성업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 교단이 세계적 종교로 발전하느냐 아니면 군소 종교로 전락하느냐는 열쇠가 바로 슬기와 합력에 있음을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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