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과 도심

인심과 도심이란 사람의 마음이 둘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심은 육신으로 좇아 일어나는 것이니, 육근을 편안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요, 도심은 本然 性을 잃지 않고 의리를 좇아 발하는 것이니, 사람의 육신이 비록 괴롭고 사지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 하여도 의리상당한 일만 행하는 것이다.
사람이 육신이 있는 이상 성인에게도 인심 있고, 하우중생에게도 도심이 전연 없는 것은 아니다. 성인도 의식재색의 안락을 모르지 않으며, 악인도 불의의 지악에 수치심이 있어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인심은 경계를 당하여 도심의 전제가 없고 부당한 욕망을 걷잡지 못하여 패가망신 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태한 인심을 도심이 되도록 삼학을 간단없이 이행하여야 한다. 즉 좌선과 염불에 힘서 마음의 정력을 얻고 탐욕과 번뇌 망상을 제거하며 대소유무와 시비이해를 연구하여 모든 경계에 정의와 불의를 똑바로 취사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하고 보면 경계마다 안정할 능력이 생겨서 불의에 흔들리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마땅히 도심으로 일신의 주를 삼고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어기지 않으면 이것이 곧 정일 집중의 공부이니 六賊이 화하여 六德이 된다.
<약력>
○ 1876년 9월 11일 경북에서 출생
○ 원기 9년 4월 29일 정산종사 연원으로 입교
○ 원기 11년 4월 1일 출가
○ 원기 13년 영산교무
○ 원기 18년 4월 26일 구산 법호 증여받음
○ 원기 29년 삼례교무
○ 원기 32년 금산교무
○ 원기 36년 10월 11일 총부에서 열반
<생애>
일찍이 대종사님 문하에 들어와 일생을 남음 없이 공도 사업에 헌신하시는 것을 유일의 낙으로 삼으신 대희사위 구산 송벽조 선생님.
구산님은 경상도 송씨 가문의 독자로서 유학의 길을 걸어온 전형적인 유가의 선비이셨다.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도문에 뜻을 두고 스승을 찾아 헤매이시는 아드님(정산종사)을 누구보다도 이해하시고 모든 경비를 장만하여 주시는 등 어려운 뒷받침을 손수 다해주시는 자비하신 어버이이시기도……
드디어 올바른 스승(대종사님) 만났다는 아드님의 말씀 들으시고는, 몇 백 리 길을 멀다 하시지 않고 완고한 가문의 만류에도 아랑 곳 없이 유유히 가산을 정리하여 온 가족을 영광으로 이사시켰으며 원기 11년에는 자신마저 출가를 결정하셨다.
숙겁의 인연이 아니고는 평범함 사람으로서는 단행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구산님은 평소에 무엇이든 남 주시기를 즐겨하시고 정직하시기만 한 덕인 이셨지만 불의에는 굽힐 줄 모르는 강직한 정의파의 보살이셨다.
이처럼 거짓을 모르는 곧은 구산님의 성격은 그 당시 일본이 패도정치로써 약소국을 침략하는 행패에 분격하여 천황에게 상소문을 올리셨다. 이 상소문은 고등계 형사에게 압수되었고 불경이라는 죄명으로 마침내 1년 반의 옥살이까지 하셨던 것이다.
구산님은 평생 대종사님을 부처님으로 모시는 동시에 아드님이시지만 정산종사도 대종사님의 분신으로 알아 추호도 소홀함이 없게 하셨던 것이다.
성자나 현인의 뒤에는 반드시 성자나 현인이 되게 하는 인물이 있는 것이다. 구산님은 분명 정산, 주산 두 분 성자를 성자가 되도록 하는 힘을 밀어주신 숨은 보살이었다.
만년을 원평에서 수양에 전념하시다가 열반에 임박하여 정신을 가누지 못하시는 구산님에게 정산종사께서 내 말을 자신의 말로 여기지 마시고 대종사님 말씀으로 알아서 최후일념을 잘 가지셔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는, 시키시는 대로 영주를 외우시고 일념을 가다듬어 평화로운 최후를 마치셨으니, 향년 75세요, 법랍은 25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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