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욕념담(無欲恬淡)을 주장한 「회남자(淮南子)」
번기(煩氣)는 벌레가 되고 정기(精氣)는 사람이 된다.
틀에 박힌 규범으로 변천하는 인간 사회를 구속 말라
정신은 하늘서 받고 몸은 땅에서 얻은 것

어떤 사람이 자기 딸을 시집보내면서 「너 시집에 가거든 절대로 착한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라.」했다. 의아한 딸은 「착한 일을 하지 않으면 나쁜 짓을 해야 합니까?」하고 되물었다. 그 아버지는 「착한 일조차 그만 두는 바에 하물며 나쁜 짓을 할 자리가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얼른 보기에는 한 토막의 소화(笑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회남자의 의도는 허무념정(虛無恬靜)의 도를 따라 처세해야 친정을 온전하게 보양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선이다, 선이 아니다하는 것은 절대성이 없다. 같은 행동이 때와 장소, 상대방의 형편에 따라서 그 가치나 평가가 좋다고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나쁘다고 배척당하기도 한다. 따라서 항상 좋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항상 때와 장소와 상대방의 형편이나 입장을 살피고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회남자는 도가의 무위자연과 만물제동의 사상을 내걸어 정치에 있어 독단적이고, 자의적이고, 협호하고, 편파적인 도덕· 규범이나 인위적 처사를 반대했다. 특히 위정자의 욕심을 없앰으로써 백성들로부터의 수탈을 막고, 백성 본위의 덕치, 천하를 이롭게 할 정치를 주장했다. 동시에 위정자들에게 낡고 틀에 박힌 법령이나 규범 또는 예악 같은 형식을 가지고, 언제나 변천하고 있는 인간 사회를 부당하게 구속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회남자의 사상은 도가사상을 바탕으로 유가, 묵가, 법가 등을 통합하여 새로운 통일적 이론 체계와 정치 및 처세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자 했다. 즉 우주의 원리를 밝히고 그 원리에 맞게 행동할 수 있도록 인간사 전반을 논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형이상학적 원리와 더불어 형이하학적인 구체적 사항이나, 과거 인간 여사의 사실들을 들어 실증하고자 했다.
회남자(淮南子)는 한나라 고조의 손자로 회남여왕(淮南勵王)의 아들이다. 이름은 안(安)이고 성은 유(劉)라 하였다. 문제(文帝) 때 여왕이 죄로써 죽음을 당하였던 바, 문제는 이것을 가엾게 여기어 여왕(勵王)이 아들인 유안을 회남 왕으로 봉하였으므로 그를 회남자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독서를 좋아하였고 총명 예민하여 시와 문장에 능숙했다.
박학(博學)하였던 그는 여러 문사들과 사귐을 즐겼다. 그래서 그 때 마침 무제의 새로운 정책으로 중앙에서 뜻을 상실한 황로의 무리들을 위시하여 여러 문객들이 서로 다투어 회남자의 언저리에 모여들어 수천 명을 넘었다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는 소비(蘇飛), 이상(李常), 좌오(左吳), 전유(田由), 뇌피(雷被), 모피(毛被), 오피(伍被), 진창(晋昌) 등 여덟 명으로 보통 「회남의 팔공(八公)」이라 칭한다.
한편 회남자는 아버지 여왕(勵王)이 죄로써 처참하게 세상을 떠난 후, 한나라의 황실에 원한을 품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의 불온한 형세를 보였기 때문에 그것을 중앙에서 추궁한 바 있었고, 마침내 스스로 자살하고 말았다 한다.
회남자는 음양의 이기(二氣)가 만물을 생성할 때에 그 화합되는 정도의 여하에 따라 여러 층계가 생기게 되는 것인데 「번기(煩氣)는 벌레가 되고 정기(精氣)는 사람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과 만물은 동일한 기에서 성립되는 것이기에 만물은 모두 일체라 하였다.
그리고 우주는 하나의 신(身)이며, 나를 소우주라 한다면 우주 전체는 하나의 대아라 하였다. 이렇게 천지와 사람의 신체가 유사하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이란 하늘에서 받은 것이고 몸뚱이는 땅에서 얻은 것이라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도의 본체에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그의 이상이라 하겠는데 인위적인 인의나 기교 같은 것은 아주 물리쳤다. 그런데 본체에 합하여 하나가 된 사람을 대인(大人), 대장부(大丈夫), 지인(至人), 진인(眞人), 성인(聖人)이라 하여 사람이 만일 지인(至人)이 되려고 한다면 무욕념담(無欲恬淡)으로 마음을 항시 고요하게 하고 편안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회남자는 생사를 하나로 보았다. 만물의 나고 죽는 것도 본체인 도(道)의 소장(消長)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생사란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는 것이다. 오직 적연히 와서 적연히 갈 뿐이며, 삶이 끝나면 근본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람, 사람과 하늘 등의 모든 만상은 서로 서로의 사이에 소리와 숨결이 상응하는 일백의 기가 꿰뚫고 흐르는데 이것을 「신명(神明)」이라 하였다.
회남자는 도의 정신 속에서도 인간적인 면려(勉勵)와 노력을 기울이고 사물을 세밀히 살필 것을 주장했으며, 혼탁을 버리고 청정한 것을 취하여 천하를 하나인 도의 세계에 통일시켜 변화에 잘 순응할 것을 강조한다.
결국 오늘을 사는 인간들은 관능적 향락을 쫓다가 눈이 멀고, 귀가 막히고, 입맛을 잃고, 인간성을 상실하고 만다. 그래서 인간은 내면적 충실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육체적인 관능은 밖으로 뻗으면 뻗을수록 인간을 둔화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을 안으로 돌려 섬세하고 때 묻지 않은 본래의 마음을 그대로 보존해야만 참된 삶을 길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작위가 인간의 참 삶을 해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과학은 자연이 섭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관능적 문명의 병으로부터 벗어나야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누리고 찾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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