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만 기억되려나?

○… 7월의 숲은 짙푸르기만 하다. 하늘로 치솟아 피어오르는 녹음, 뜨거웁게 작열하는 태양, 이런 7월에 우리 교단의 법인성사는 이루어졌다.
금년 7월 26일은 60회 맞는 날이다. 교단 최초의 표준제자로 뽑히어 교단을 법계<진리>로부터 인증 받아 창생제도를 하기로 하늘에 기도 올리어 백지 혈인 증험을 얻은 것이다.
또한 9인 선진은 전무출신의 근본정신인 「사무여한(死無餘恨)」이라는 표징을 이루었다.
60년 후, 지금 우리 각자의 가슴에 「법인의 증험」은 어떻게 살아있으며, 9인 선진들이 진리에 맹세를 했던 창생제도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
「개인」의 가슴마다, 「교단」이라는 조직은 우리가 진리로부터 받은 「법인의 약속」이 사라지거나 퇴색되어질 때 우리의 생명은 어디에 뿌리를 연해야 할까? 어제와 오늘 선진과 후진 이들의 가슴에 묻어있는 법인의 씨를 다시 찾아서 개인이나 교단에 「법인의 약속」은 이루어져야겠다. …○
법인절을 맞을 때마다 나는 새로운 부끄러움으로 가슴이 답답하다.
대종사님께서 표준 제자로 선정한 아홉 사람에게 법계에 기도를 올리게 하신 뜻은 무엇인가?
백지혈인으로 보여준 진리의 인증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대종사님에게는 뜻이 분명 계셨을 것이다. 이 두 뜻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참으로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어렸을 때 일이다. 부모들이 친척집에 가면서 집을 보라고 했다. 큰 집안에 혼자앉아 있는 것이 갑갑하고 지루하던 때에 이웃 친구 둘이 놀러왔다. 나는 그들이 새로 산 공을 차고 싶어 동네 놀이터로 나갔다. 해가 질 녘에야 집이 걱정되어 집에 왔을 때 아직 부모들은 오지 않았었다.
열린 방문들을 닫고 있을 때 부모들은 돌아왔고, 「집을 비우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부끄럽게 「예」했다. 방으로 아무 말 없이 들어간 어머니는 거울을 들고 나와 내 얼굴을 비췄다. 그리고는 「네 얼굴에 거짓이 없느냐」했다. 내 얼굴은 점점 붉어졌다.
법인절이면 대종사님의 얼굴 위에 어머님의 얼굴이 어리고 만나 뵈옵지도 못한 9인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그리고는 내 모습이 떠오르고 우리 교단이 생각되고, 부끄럽고 부끄럽다.
대종사님의 두 뜻을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대종사님께서 9인 제자에게 법계에 기도를 오리게 한 것은 개인이 진리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진리와 더불어 살아가게 하심이며, 백지혈인으로 「진리의 약속」을 받음은 우리 교단이 진리로부터 일을 대행받은 것이다.
내가 진리와 더불어 살아감은 진리 앞에 서서도 하나의 부끄러움이 있을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진리 앞에 서서 부끄럽지 않은가?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 색깔이 점점 붉어졌듯이 법신불 앞에 섰을 때 전무출신으로서 몸뚱아리가 점점 희어지고 있는가 검어지고 있는가?
전무출신이라는 아름다운 상징과 튼튼한 껍질을 둘러쓰고는 있지 않은가?
백지혈인으로 진리계의 인증을 받음은 우리 교단이 그늘진 곳을 밝혀주고, 억눌린 자에 자유를 찾아주고 힘없는 자에 힘이 되어주고 빼앗기는 자의 편에 서서 보호하여 주어야 한 것이다.
진리는 가난한 자에, 억눌린 자에, 빼앗기는 자애, 그늘진 곳에 있어 그들을 살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 가슴 속에 살아있어야 할 법인의 뜻이 한갓 역사요 문자라면 이것은 대종사님이 말씀하신 「낮 도깨비」이다. 전무출신이라는 너울을 쓰고 대낮에 활보하는 낮도깨비는 대낮에 활보하기 때문에 세상이 자기를 위해 있는 것처럼 활보한다. 자기가 제일 신심이 있고, 제일 공심이 있고, 제일 공부인이고, 제일 법통을 있는 제자이고. 부끄럽고 부끄러운 내 가슴에 법인의 뜻이 죽지 아니하여 「낮 도깨비」가 안 되어야지. 낮도깨비 너울을 써서는 안 되지. 부끄럽고 부끄러운 7월이여.◇

 <상주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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