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피」를 상기하자

일제의 굴욕적 학정을 겪어보지 못했거나 해방의 기쁨에 함성을 질러보지 못한 삶은 「광복절」이 한갓 공휴일이라는 것 외에 특별한 감흥을 자아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교단적 일대 성사(聖事)인 법인절이 주는 이미지도 대다수의 교도들에겐 이에 벗어나지 못하여 연례행사로 밖에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문제를 삼아봄 직 하지 않을까.
어찌되었건 대 성자의 출현을 계기로 진리는 「피」를 보았다. 일반 생활인들 간에도 좀 더 특별한 그리고 획기적인 사건이나 사업을 벌일 경우, 아니면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고 나섰을 경우, 안도의 한숨과 함께(피를 보았다.)는 말을 토로한다. 이 말 뒤에 숨은 뜻은 벌이는 사업이 그만큼 필연적이었지 역경의 극복이 그만큼 어려워서 전력투구를 하였다는 것이다. 진리가 이 회상에 보여준 피는 무엇인가, 어떤 필연성과 어떤 어려움 때문이었을까, 이를 잘 파악하여 진리의 피 값을 할 수 있어야겠다.
우주 전체와 전 인류가 진리의 당체라면 「진리의 피 값」은 전 인류와 전 세계를 향하여 보상되어져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법인(法印)」이란 교단의 성립과 존립 합리화하는데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라 세계와 인류로 향하게 하는 사명감을 부여한 인(印)인 것이다. 아니 그러한 사명감을 갖고 일해 보겠다는 결의에 대한 진리의 결재의 인(印)인 것이다. 전무출신의 도에 「전무출신은 누가 맡긴 직이 아니요 스스로 맡은 천직인 동시에……」라고 명시되어 있듯이 이 교단은 누가 조직해 준 것이 아니요, 진리의 결재를 받아 그 사명감을 실천하기 위하여 스스로가 조직한 교단이다.
전무출신자가 근무에 태만해지거나 퇴굴심이 날 때 위의 전무출신의 도를 상기시키면서 재 각성을 촉구하듯이 교단이 사명의식에 태만할 때 「진리의 피 값」를 상기하면서 재각성을 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각성의 방법이다. 선진의 얼을 추모하고 전 교도 각 개인이 자신의 수행과 성불제중의 서원을 다지는 계기를 삼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단적이라는 차원에서 각성해 보자는 것이다. 진리가 인(印)을 내려주었다고 해서 그냥 지속되어지는 단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진리의 당체인 세계와 인류로부터의 평가가 뒤따른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단 내의 개인이 각성하면 자연히 교단적 각성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집단이란 개인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개체 구성원 외에 조직을 운영해 나가는 목적의식과 율(律)이 있고 분위기가 있는 것이며 소위 단체성(power)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내일로 법인절이 다가왔다. 내년이면 인생 60주년이 된다. 인생 60이면 인격의 완숙함을 드러내지만 교단 법인의 60년은 너무 어리다. 그러나 어린대로 좋다. 어느 산인(山人)은 최초의 결심이 순수하고 참된다고 해서 자립을 초지라고 했다는 데 처음 결재 서류 만들어 진리의 인(印)을 받던 초지는 60미만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잊혀져서는 되겠는가 싶다. 국가가 각성하면 국민이 새로워지고 가정이 혁신되면 가족이 생기를 되찾는다. 진리는 피 값을 하지 못하는 결재서류를 취소야 하지 않겠지만 생기를 되찾도록 교단적 각성이 있어야겠다.◇

 <동산선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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