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현담

고향
도중에서 이리저리 헤매지 아니하고
선뜻 내친걸음 고향 땅을 밟았네.
운수 절경이라 거기 집을 삼지 말지니
눈 쌓인 깊은 골에도 내사 헌거롭구나.
떠날 때는 옥과 같이 아름답던 내 얼굴
돌아와 이제 보니 백발 아닌가.
나 아닌 이내 모습을 뉘가 알아보리오.
존당에 무엇 하나 들일 것이 없노라.
달본(達本)
물어중로사공왕(勿於中路事空王) 책장환수달본향(策杖還須達本鄕)
운수격시군막주(雲水隔時君莫住) 설산심처아비망(雪山深處我非忙)
감차거일안여옥(堪嗟去日顔如玉) 각탄회시빈사상(却歎廻時?似霜)
철수도가인불식(撤收到家人不識) 편무일물헌존당(便無一物獻尊堂)
고향 고향 하는데, 어디에 고향이 있는가? 여기는 바람도 없고, 구름도 없고 뜰도 나무도 집도 없는 고향- 일념, 회광으로 스스로 돌이키는 휘현(輝玄)한 성품의 바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세어보니……」하는 따위의 흘러간 옛 노래가 아니더라도 고향을 등지고, 정처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방황하여 온 지가 돌아가야 한다고 벼르고 또 벼르며 밤낮으로 그리고 그리던 고향은 산이 푸르고, 맑은 시내가 흐르며, 새 소리도 아름다운 두메산골, 더구나 부모· 처자· 형제· 친지가 기다리는 소박한 인정이 서려있는 그러한 정겨운 마을은 꿈에서나 그리던 풍경이었고, 정작 내가 찾아든 그곳은 풍경이었고, 정작 내가 찾아든 그곳은 자연도 인물도 풍속도 없는 본래 무일물의 비탈, 한 생각 돌이킴으로 곧 본지풍광이라, 성품의 바다를 사고 흐르는 빛은 한이 없다 하리라.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그대로, 곧 바로 감이다. 그야말로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물쭈물하다가 저기에서 서성거리는 것은 시간의 낭비요, 방황이다. 방황의 과정에서는 길을 잘못 들어 고향 길이 영영 막혀버리는 수가 있으니 운수묘경, 기암절승에 도취되어 거기에 길이 머물러버린 채, 더 나아갈 줄을 모르는 집착과 정체라는 타성이 그것이다. 신기탁이(神奇卓異)가 참이 아니요, 참은 떳떳한 것, 그래서 만법이 적연한 성품의 바다를 돌이켜 비치는 일념이라는 사실을 저마다 깨달을 때에는 집착도 방황도 허송세월도 받아드릴 틈이 없는 것이다. 이제 일체를 도방하(都放下)하고 떳떳이 돌아와 고향 땅을 디디고 선, 어제의 얼굴이 아닌 당당한 이 나의 모습을 과연 그 뉘가 알아볼 것인가? 청춘도 백발도 고향에 돌아왔다는 나도 한 생각 돌이키는 그 한 생각마저도 원래에 나에게는 없는 물건들이라, 예서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발이나 씻고 들어가 더불어 호올로 차나 한 잔 할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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