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는 어디 가져다 맞추던지 들어맞는 것이 이상이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다. 세계 어디가도 만날 수 있는 것은 편한 것이지만, 귀한 것은 세계 어디 가도 만날 수 없고 거기만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함석헌 「백두산 호랑이」에서)
획일성을 지닌 것이 매카니즘이다. 그와 반대로 다양성을 지닌 것이 인간이란 말도 무리 없는 표현이다.
기계문명의 발달이 극치에 다다른 오늘날 인간은 그 기계의 노예가 되어간다. 아니 이네 그 기계의 노예가 되어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한 진단일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진 기계가 그 인간의 존재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전자두뇌가 그렇고 가공한 원자폭탄의 존재가 인간을 그렇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근한 예로는 그런 기계의 발달이 인간성을 박탈해간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외면 말아야 할 현대인의 과제이다. 인간이 지난 제 가끔의 개성을 이 매카니즘 아래 통일시키려는 것이다. 이것은 당초 인간들이 그들의 두뇌로서 좀 더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고자 안출해 낸 것들이었다. 이것은 당초 인간들이 편리함을 따라가는 동안에 알게 모르게 매카니즘은 인간에게 건조한 생활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고향을 잃은 뿌리 없는 망향인이 되었다. 고향을 잃었다는 것은 전통을 상실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전통을 잃으면 인간 정신을 잃게 된다는 논리는 어렵지 않는 추상이다.
이렇게 매카니즘의 노예가 된 인간에게 무엇이 남아있을까! 고향을, 전통과 개성을 잃은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남은 것은 겉으로 허수아비요 안으로는 신경질뿐이다.
그렇다면 인간 존엄의 본질은 본래의 인간성과 개성, 그리고 전통을 잃지 않는데 있는 것이다.
□ 민중은 제왕(帝王)
「민중은 난대로 있으므로 소(素)요, 박(朴)이므로 단(單)이요, 순(純)이므로 하나다. 한 소리만 하는 것이 민중이다. 한 소리가 참 지(智)다. 정말 지(智)는 민중이다.」 양반이라 갈라질 수밖에 없다. 민중은 각각 제노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제 지킬 소유도 지위도 없기 때문에 한 소리일 수밖에 없다. 초상지풍(草上之風)이면 필언(必偃)이라. 하늘 명령 들으면 한 세대로 눕는 것이 민중이다. 그러므로 약하기 그보다 더한 것이 없지만 그것을 막아낼 자가 없다. 막아낼 수 없는 한 소리, 곧 하늘 소리를 하기 때문에 종내 이기고 임금이 된다. 용맹이라 하지만 천하에 용맹한 것은 하나밖에 없다. 민중이다. 인자무적천하(仁者無敵天下)라 민중은 인(仁)이다. 전체이기 때문에 거기 대적이 있을 리 없다. 인자무우(仁者無憂)라 어진 자는 근심 아니 한다. 민중이기 때문에 근심이 없다. 가진 것이 없는 것이 민중이기 때문에 근심이 없다. 가진 것이 없는 것이 민중이다. 그 대신 민중은 모든 것을 가진다. 귀족은 지위를 가지지만 민중은 그 지위를 지위되게 하는 나라를 가진다. 곧 나라 그것이다.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겠지만 민중은 그 권세를 권세가 되게 하는 생명을 가진다. 곧 생명 그 자체다. 그러므로 민중은 이를 것이 없고 대적이 없으므로 근심이 없다. 천하에 무서운 것은 금심이 없는, 두려움이 없는 얼굴이다.…… 민중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영웅은 죽음을 두려워할 줄 알고 민중을 존경해야 되는 줄을 어찌도 모르는 고! 「백두산 호랑이」에서 하는 「함」옹의 지론이다.
정치가라는 서투룬 한국의 엿장수에서 버림받은 고독한 한국의 민중, 이(李)정권 때가 그랬고 짧은 동안이지만 장(張)정권 때가 그러했다.
그 때 민중들은 버림받은 망아지처럼 수척한 몰골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민중은 그렇게 허수아비가 아닌 것이다. 「함」옹의 말처럼 민중은 지(智)이며, 인(仁)이며, 용(勇)인 것이다. 그리고 국가나 사회구성의 필연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들을 버리고 특권층이나 독재자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민중을 저버린 그들은 쓰러졌고 도망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을 체험한 것이다. 정말 민중은 천심이며 지상의 제왕이란 것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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