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의 이해

제주도 전설에 「선무대 할망」이란 거녀(巨女) 전설이 있다. 그녀는 엄청난 거구였기로 바다를 건너 육지를 왕래할 때는 치마 자락을 살짝 들고 바다를 건너 육지에 건너갔으며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발목이 동해에까지 뻗어 발로 물장구를 칠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번은 이 거녀(巨女)가 최신 유행의 속옷을 입고 싶어서 제주도에 있는 베를 전부 걷어 들였으나 키가 너무 크기 때문에 베가 모라라 속옷이 짧게 되었다. 거녀는 신경질이 발작, 화김에 한라산 한쪽 부리를 뽑아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쳐버렸다. 백록담은 바로 한라산 부리가 뽑힌 자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동댕이친 부리가 닿은 곳이 산방산이라나.
얼핏 보면 우스개 같은 얘기이나, 이와 같은 전설은 남해안까지 깊숙이 전파되었고 강화도의 「돌맨」에 관한 전설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강화도의 「마귀할멈」은 그 거대한 암석을 서해 건너 쪽에서 머리에 이고 양쪽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끼고 강화도로 운반해왔다는 것이다. 이렇듯 전설은 현실적으로는 믿을 수 없는 괴력의 소유자, 신기력의 소유자가 등장하고 또 주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믿고 그 위력을 경외하며 숭상하고 제사까지 지냄으로써 이 전설은 민속 신앙으로 발전하였다.
흔히 민속신앙은 자칫 미신으로 배격하며 그 배격의 이유를 비과학성 즉 합리성의 결여와 실용성의 결핍을 들고 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현대처럼 비인간화를 개탄하는 소리가 높은 대중시대의 원자화한 인간(atomic person)들에게 「마귀할멈」같은 정성과 속치마가 짧아 신경질을 부린 「거녀(巨女)」의 순진성마저 용납도지 않는다면 우리의 정신생활에서는 무엇이 남을 것인가, 늘 흔들리면서도 생각하는 데에 인간의 존엄성이 있지 않을까.
민속신앙의 여전한 미개성은 생활의 과학화를 지향하는 현 단계에서는 무의미한 시대적 역행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현대적인 것의 전부라는 생각은 크게 우려되는 노릇이며, 더욱이 종교마저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입정처(入定處)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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