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단체나 기관을 막론하고 예산은 기관차의 연료와도 같은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얼핏 하면 입에 오르는 예산이 없어서 일을 못한다는 푸념은 금고 안에 현금이 없다는 탄식이기보다는 그 일을 위하여 편성되고 승인된 예산이 없다는 타령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예산은 대개 그 예산을 심의하는 사람들 자신이 부담했거나 또는 그 심의를 하는 사람들을 대표로 파견한 사람들이 부담한 돈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유목적적 유의도적으로 그 어떠한 결과를 기대하면서 부담했거나 쾌척한 것이기 때문에 예산심의과정을 주시하기 마련인 것이다. 국회의 예산심의권이 입법권과 더불어 국회권한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 것도 결국은 납세자들이 자신들이 납부한 돈의 행방과 효용을 알고 싶어 하고 그 망실과 낭비를 방지하고자하는 국민의 심정의 발로라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종교단체에 있어서의 세입내역은 그 성격이 약간 달라서 화해대립이나 강제가 작용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양심을 표방하고 또 믿는 관계에서 예산이 편성되고 집행되는 것이므로 그 類를 달리한다 하겠으나 알고자하고 합리적인 운영을 바라는 마음은 다를 바가 없다.
 우리 교단에 있어서도 매년 중앙교의회에서 예산을 심의의결하고 집행부는 그에 의하여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점에서 다른 어느 단체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그 시기와 방법은 더욱 연구 개선하여 보다 합리적인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므로 그 문제점을 적시하고 이에 대한 대책강구를 촉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먼저 예산심의 시기문제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매년 3월 26일 대각개교절을 기하여 경축행사를 갖고 연이어 수위단회와 교정위원회 그리고 중앙교의회를 소집하는 것이 하나의 전통적인 관례로 되어왔다. 그러나 우리교단의 회계연도개시가 3월 1일이므로 해마다 3월 한 달은 예산공백기가 되고 있다. 물론 이 공백개의 예산집행이 어김없이 추인되므로 별 애로 없이 지내왔다 하더라도 제도상으로는 타당하다고 말할 수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거론할 필요도 없이 예산심의가 미진하여 연도개시 전 예산통과의 가능성이 없을 때에는 가예산을 편성하여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예산도 통과시켜 줄 기관을 연도개시 전에 갖고 있지 않는 것이다. 제도를 만들 때에 이러한 점이 고려되었어야 할 것이었으나 대각개교절의 경축행사에 대중이 운집하는 시기를 취하여 총회를 열었던 관례가 제도로 굳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을 남긴 것으로 안다. 이것을  해결하는 길은 회계연도개시를 4월 1일로 고치든가 그렇지 않으면 중앙교의회의 수집을 신년도 개시 전에 하든가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회계연도를 무엇 때문에 구태여 3월 1일부터로 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국가의 회계연도와 일치시켜 1월 1일부터 고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된다면 예산심의는 11월 중에는 마쳐야 할 것이니 매년 교역자 훈련의 끝에 소집되는 교정위원회와 시기를 맞추면 더욱 합리적이 아니겠는가. 3월 경축행사는 경축행사에 그치게 하고 교중사를 논의하는 회의는 그 시기를 별도로 잘 선택하여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특히 10월 말경에 있는 교정위원회는 신년도 예산을 차분히 그리고 진지하게 논의하기 가장 알맞은 시기이며 교무들이 예산내용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고 충분한 시간을 가져 검토할 수 있는 최적기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맞추어 중앙교의회를 소집한다면 3월의 일반경축객으로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하는 회의보다 더 알차고 합리적인 회의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시설과 경비만 허용한다면 하루 빨리 예산심의의 시기와 방법을 개선할 수 있도록 깊은 연구가 계속되기를 촉구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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