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통스러우면 모두가 지옥
이에 나는 어느 때나 나를 살펴보는 다음 몇 가지를 표준으로 삼는다. 첫째, 내 신앙생활에 무슨 이상이 생겼는지를 살펴야 한다. 입교했을 때의 법열이라 얼마 못가서 변해버리는 신심, 변화할 수 있는 신심은 위험한 것, 저 식물도 종자 없이는 결실도 없는 것 같이 신심 없이는 불보살을 이룰 수 없다. 더구나 한번 정토회상의 대열에서 낙오되면 악도를 면할 길이 없다. 둘째, 내 마음 공부가 해이해지지나 않나 시시로 살펴야한다. 석가여래나 대종사님께서도 몇 백 년을 닦아 대각을 이루셨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마음공부, 마음의 대중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완전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끊임없는 노력으로 해야 한다. 사실 이 기질 변화되어가는 데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은 미안한 말씀이지만 모처럼 만난 정법회상을 양보할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설사 교당에 내왕한다 하더라도 헛된 한평생을 보내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셋째, 남에게 선심을 베풀 수 있는 아량이 있나 찾아보아야 한다. 오늘은 누구를 위해서 선행을 베풀 것인가 하는 마음이 언제나 싹트는 사람은 앞으로 복을 장만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도 누구의 덕을 업고 살 것인가 하는 생각이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선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은 앞으로 받을 인과를 피할 길 없다. 직접 짓지 않고는 복을 받을 수 없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가짐 이것이 종교인에게 가장 귀중한 것이다. 우리의 육신은 오직 사은의 공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나 국가나 세계를 위해 봉사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실천하는 것이 봉사요, 희생이다. 이러한 봉사심 없이는 복을 바랄 수 없다. 우리는 대개 봉사와 희생을 크게 생각하고 있다. 자기의 힘으로 학교를 세워서 문맹퇴치를 했다거나 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던가하는 것만이 희생이요, 봉사는 아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어느 모로든지 크고 작고 간에 남을 위해 하는 일은 모두 봉사요, 희생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희생이나 봉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주변에서 베풀 수 있는 것이다. 길에서 노는 아이들의 코 한번을 닦아주는 것도 봉사활동이며 공원에서 휴지 한 조각을 줍는 것도 봉사활동이다. 뿐만 아니라 한 집안에서도 서로 뜻을 받아주고 세정을 알아주는 것도 일종의 봉사활동이다. 물량적 결과가 나타나야만 봉사는 아니다.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이 결여된 종교인은 참다운 신앙생활을 누릴 수 없다. 참다운 신앙생활이란 남에게 봉사심을 베풀었을 때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항상 내 마음과 언행을 살피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천여래 만보살의 대열에서 언제나 극락생활을 할 수 있다.
원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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