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백과는 무르익어 가는데
첫째, 원불교가 안일무사주의에 빠져 들어가는 흔적은 없는가? 소태산대종사는 정의이어든 죽기로써 취하고 불의이어든 죽기로써 버리라고 교시하였는데 우리는 지금 정의를 세우고 불의를 물리치기위하여 무엇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가? 혹 불의를 보고도 원만이라는 미명아래 안일과 무사를 추구하고 있지 아니한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하는 정열이 얼마나 생생하게 타오르고 있는지 조용히 자성해보자. 둘째, 원불교가 금력과 권력에 지나치게 끌려가는 훈적은 없는가? 종교가 대중 속에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금력이나 권력을 가진 특권층에 지나치게 가까워질 때 자칫 타락하기 쉽고 대중을 지도할 수 있는 역량으로 상실하기 쉬운 것이다. 어느 종교보다도 생생한 힘을 분출시켜야 할 우리 원불교이기에 만에 일이라도 금권에 끌려가는 흔적이 없는지 조용히 자성해보자. 셋째, 원불교는 외화외식에 기울어지는 흔적은 없는가? 진정한 교단의 힘은 훌륭한 건물을 확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기운으로 살아 움직이는 인재를 확보하는 데 있다. 그 인재의 확보는 자라나는 청소년을 똑바로 지도하는 데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기에 대산종법사는 인류가 당면한 삼대문제 중의 하나로 청소년 문제를 누차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가슴 속에 청소년을 올바로 지도하기 위한 경륜이 서 있는가를 조용히 자성해보자.
원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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