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봉사 힘쓰는 안양교당
자치적인 법회운영 이채

 교당의 발전은 지역사회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는 교당의 발전도 급격하게 요동하며 발전하기 마련이다.
 안양에 일원의 종자가 심어지기는 7년 전인 원기52년 3월, 종로교도 김의정씨(현 주무)가 부군 윤태종씨(직물검사소 전무)를 따라 안양으로 이주하여 자택에서 친우들을 모아 법회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 중앙총부 순교감으로 종로교당에 주재하던 김지현씨(현 중구교무)가 월1회 출장법회에 30여명의 교도가 모이게 되자 5월에 김의정씨는 단독으로 중앙동에 전셋집을 마련, 6월 26일 봉불과 동시에 선교소 간판을 걸고 초대교무에 김이현씨(현 동산선원 교감), 부교무에 김지은씨(현 김제교무)가 발령되었다. 이 집은 김인명씨(현 지부장, 김원필(외과원장) 집으로 이로 인연되어 부부가 입교, 부인 이인성화씨(현 주무)와 같이 교당의 중요 재가임원으로 활약하게 된 것이다. 8월에는 어린이회를 창립하고 10월에는 학생회 발기총회를 열어 학생회가 조직되니 교화에는 더욱 활기를 띄우게 되었으며 중앙총부로부터 지소승격 인가를 얻었다. 54년 2월 교당확장을 위하여 5십만원 기성계를 조직하여 3월에는 다시 김의정씨가 주관이 되어 장내동으로 확장 이사를 했다. 이 동안 안양이 위성도시 계획과 섬유공단이 설치됨에 따라 전국에서 사람들이 직장관계로 모여들자 안으로는 인연 닿는 교도를 한 사람씩 찾아 나섰고 밖으로는 안양사회에 원불교의 이미지를 심기위해 대 사회활동에 적극 참예, 폐품수집으로 군부대위문(2월), 수해의연금 가두모금(8월) 등 운동을 전개했으며 연례적 행사로 구세군에서 경영하는 양로당을 방문하고 있다. 12월에는 교도들의 봉공사업으로 한국보육원에 이불을 마련하여 전달, 교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쉬지 않고 활동하게 하고 있다. 교당의 교화발전을 위해 전 교도가 합심이 되어 움직여 가는 한편 54년 11월에는 수원에서 법회에 참석하던 장순행씨가 집을 짓고 낙성식에 김교무가 초청되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법회 본 것이 기연이 되어서 출장법회를 월1회 개최하니 자체교당이 세위진지 2년 반도 못되어 연원교당을 두게 되었다. 55년 4월 반백년대회를 앞두고 송명호 교무가 부임하여 전셋집을 전전하던 안양교당은 56년 6월 10일 안양5동에(현 위치) 대지 94평, 건평 30평의 교당을 3백50만원에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4번의 이사에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어느 교무가 교도들의 훈련에 소홀하랴마는 안양교도들의 교화중심은 수행에 바탕 하여 바른 길을 모색하는 데 두고 있다. 법회는(3ㆍ6법회), 설교위주보다 경강식으로 교리를 설명, 교도 모두가 노트를 하고 있으며 교도와 교무는 거리 없는 교화에 교도가 사회를 보며 성가지도(오르간)도 교도 스스로 하고 있어 자치적 활동으로 법회를 운영하고 있다. 안양사회에서 원불교 교도들은 지식층으로 인증 받고 있듯이 모두 고졸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음도 특기할만하다. 교도들은 신앙을 중심으로 맺어진 인연을 형제애로 발전시켜 서로가 언니 동생으로 생활하면서 교도 중에 불행한 일을 당하거나 극빈교도가 있을 때는 모두 자기 일처럼 주선하며 돕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김의정 주무는 입교20여년의 신앙생활로 현재 서울에 살면서 안양교당을 살피고 극빈한 교도가 있으면 제일 먼저 보살펴 주고 있다. 깊은 수행으로 이룩된 인격은 타 종교인들도 모두 큰 형님으로 존경하고 있어 간접교화에도 일역을 담당하고 있다. 57년 2월에는 다시 천안에 연원교당을 내니 연원교당을 둘이나 내는 중견교당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58년 1월 안양이 시로 승격되자 교도들은 도시교당으로 외모도 갖추어야겠다고 결의, 중심지에 새 법당 건축에 힘을 모으고 있다. 지부장 김원필씨가 건축 부지를 희사하겠다고 약속되어 60년도에는 법당을 신축할 계획이다. 송교무는 「교당은 튼튼하고 쓸모 있게 짓고 유지금을 세워 교도에 의존하는 교당운영을 탈피하겠다. 신축기금이 넉넉해도 경쟁의식이나 사치스런 법당은 짓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제 3백여명의 교도를 가진 안양교당은 일반법회에 30여명, 학생법회에 30여명이 집회되고 있는데 앞으로의 교화는 청소년교화에 중점을 두어 학교교우회 조직 준비에 바쁘다고 한다. 『교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사업을 하면서도 밖으로 나타나는 것을 싫어하고 있다』고 말하는 송교무는 올 여름 양주청년봉사대에 조건상씨(중앙의원장)가 1일 봉사진료를 하는 등 교당전체에서 전개하고 있는 사회사업 말고도 교도 개인이 봉사하고 있는 교도가 많다고 귀띔하여준다. <虛>
<사진> 4번의 이사 끝에 마련한 법당, 내년에 신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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