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적인 풍토와 전통을 위하여-

대종사님께서는 개교와 함께 모든 제도와 그 운영을 가장 현대사회제도의 극치라 일컫는  민주제도를 창안하시어 모든 제도를 민주화하셨고 그의 운영을 또한 가장 이상적인 민주운영을 실제화하셨으며 모든 생활화 되도록 하시었다. 이제 반백기념을 기념하여 종법사님을 비롯하여 수위단원과 각종 직위의 임기가 만료됨과 동시에 법의 정한 바에 의하여 새로이 선출되고 또 임명하게 되고 따라서 수차의 교정위원회에서 3년 이상 근무자의 자동교체를 결의한 바 있다.
이에 우리는 이번 3월 대회를 앞두고 물러가고 나서는 데에 있어 종교인다운 또 원불교인 다운 전퇴의 윤리와 바람직한 전통이 이루어질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한다. 인간이 제 나름대로 살고 간다. 살고 간 뒤에는 그 값어치가 평가되어질 때 혹은 빛이 나기도 하고 빛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것은 바로 이 물러나고 나서는 진퇴가 분명하고 분명치 못한 데서 크게 좌우되고 있음을 우리는 선인들의 행적에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적으면 적은 대로 크면 큰 대로, 물러설 자리에서 물러서질 못하고 나설 자리에서 나서지 못할 때 그 이름에 욕됨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옛날 요순시대에는 위를 사양했다고 한다. 선의의 양위! 선후진이 서로 그 위를 사양하며 물러서는 풍토! 여기에는 후진을 아끼고 키우는 선진의 아량과 선진을 섬기고 받드는 후진의 미덕이 있다. 이러한 전통은 천여래 만 보살을 배출할 이 교단의 초석이 될 것이다. 또 직위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게 된다. 현대 사회의 특징이 책임의 한계가 분명함에 있다고 한다면 맡은 바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또는 그 책임에 위배되었을 때 이에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하여 진퇴에 있어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 책임을 다하고 나면 그 뒤에는 공의에 의하여 다른 책임자가 그를 이어받아 완수하는 것이 민주생활의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이가 바로 물러서는 윤리라면 따라서 나서는 윤리 또한 중요한 것이다. 물러서고 나서는데 그 도를 지키기 어려움은 국가 사회나 개인 가정이나 우리 교단에도 마찬가지로 특히 어려운 때일수록 문제가 되는 것이니, 충무공, 백범 같은 이와, 두골의 나서는 도는 법 받음 직하다. 더욱이 대종사께서는 제자들을 훈도 하실 때 「모든 다 주인이다.」라는 주인 의식을 심어주시어 다 한결같이 교단의 주인 되고 세계의 주인이 되어 봉공토록 하셨다. 따라서 추종하고 끄달려 일하는 머슴이나 객(손님)이 아니라, 스스로 창안하고 개발하여 평지에 조산하는 개척의 정신을 배웠다. 이 정신의 결정이 반백년의 대업을 성취하였다고 한다면 50년대를 넘어서고 70년대를 향해서 막중한 과업을 수행해야 할 오늘에 우리의 처지에서 스스로 포기하고 체념하면서 교정 참여에 도피하고 남에게 미루다 보면 오히려 시비 없고 초연하여 안일하기를 바라게 될 수 있다. 모든 지금까지의 종교인과 같이 또는 수도인처럼, 일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났고 시끄러운 것보다 조용한 것이 났고 나타나는 것보다 숨어있는 것이 났다는 은둔 군자들의 많이 배출하게 될 것이다. 만일 이러한 풍토와 정신이 우선해진다고 한다면 이 교단의 장래와 대종사님의 정신운동은 그 빛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만 하여도 선생님들에 대한 반역이요, 역사의 심판을 어떻게 감당하랴 싶어 등골이 소연해진다.
오늘에 교단적 과업과 우리들의 사명이 막중하다고 할 때 그에 비견하여 우리들의 모자람을 자인할 때, 더욱이 크게 분발하고 맹성하여 너무나도 스스로의 처지에서 자진하여 교정참여에 나서야 할 것이다. 진퇴의 윤리가 태평성대로서 좋은 때일수록 서로 위를 사양하고 수란의 위기인 어려운 때일수록 자진해 자담하는 아름다운 풍토가 이룩되어 선임자는 후임자를 아끼고 키워주며 후임자는 선임자를 받들고 함께 하는 우리 교단다운 전통이 세워지기 위하여 그 본을 보이고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자각하여 막중한 성업 완수에 더딤이 없자 하는 것이다. 이때가 바로 반세기에 걸쳐 생활해 온 민주 생활의 본보기가 되리라고 부언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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