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 대종사는 모든 면에 있어서 혁신주의자요 진보주의자며 점진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병든 사회를 치료하고, 인간을 개조하고, 세계를 정화하려는 것이 대종사의 근본 뜻이었따.
일상수행의 요법이나, 개교의 동기나, 삼학팔조, 사은사요 등의 교리에서 대종사의 혁신주의적 사상이 잘 나타나있다. 그러나 대종사는 결코 급진주의자는 아니었다.
이소성대의 창립정신이나 강자약자 진화상의 요법 등에서 대종사의 온건하고도 점진적인 혁신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원불교 교단의 입장은 결코 급진주의가 아니라 점진적 혁신주의인 것이다. 사회 개조나 인간 개조의 자세 또는 교단발전의 자세는 어디까지나 이소성대 상생상화의 진보주의인 것이다.
원불교 개교 당시 일본의 침략 정책에 대해서도 대종사는 방언공사와 혈인기도 등을 통해서 묵묵히 민족의 힘을 길어왔던 것이다. 또한 교단창립에 있어서도 엿장사, 숯장사, 발 갈기 등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공든 탑을 쌓아갔던 것이다. 하나의 혁신과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는 스스로의 힘을 먼저 기르고 순리자연한 도를 따라서 하나하나 이루어갔다. 결코 일시적 요행수나 비정상적 급진주의에 의한 발전을 도모하지 않았던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급진적 발전을 꾀했던 재벌들이 하나 둘 도산되어가고 있는 현상은 경제에 있어서 금전주의의 맹점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놓고 볼 때 급진주의는 일시적 성공을 가져올 수는 있어서도 영원한 성공은 결코 가져올 수 없었던 것이다.
근래에 와서 우리 교단에 있어서도 가끔 급진주의가 대두하려는 움직임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기본 실력의 양성이나 충분한 준비 없이 너무 급하게 서두르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급진주의는 대종사의 혁신주의적 입장과는 결코 같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종사의 기본입장은 어디까지 진보적이요, 점진적인 혁신주의임을 거듭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운동장 하나 없는 총부
현재 총부는 넓은 대지에 수백 대중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운동장 하나 없어 총부 대중의 건강과 체력관리에 큰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개교 반백년 기념대회 준비 때 총부를 확장하면서 운동장이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으나 결국 실현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 총부에 거주하는 젊은이들은 물론이거니와 교단의 장래를 짊어질 수많은 예비 교역자들은 운동량의 부족으로 인한 체력의 약세와 이울러 정신적으로도 소극적 사고방식을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에 있다. 영육쌍전이나 이사병행이나 생활 속의 종교다 하는 교리가 아니라도 건전한 정신과 건전한 신체는 직결되는 것이다.
근래에 와서 총부의 일부 교역자들이 사회의 흐름에 따라 정구를 배우게 되고, 따라서 이들이 원광대학에 봉직하는 교역자와 협조해서 종교인 정구대회를 가진 일도 있었다.
특히 금년에 와서는 국내 종교인 정구대회를 가지려고 했다가 교구 대항 교도 정구대회를 갖기까지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 하겠다. 총부가 아무리 운동장 하나 없다 할지라도 운동에 대한 열망은 이러한 현상으로까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점에서 운동에 대한 기본 관점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이번이 정구대회가 몇몇 기호 가율의 오락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전 교도들에게 운동을 보급 권장하는 정책이 수립되어야 하고 특히 교역자들의 경우에는 다수의 교역자가 다함께 참여하는 운동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의 정구대회는 규칙대로 교도의 4종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는 교도에 한해서 출전시켜야만 원불교 교도 정구대회로서의 뜻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단이 행정적 차원에서는 먼저 총부에 운동장을 시설해서 교역자부터 운동을 해야 하고 아울러 전 교도에게 운동을 보급시켜야 할 것이다.
현재 초우 영모전 앞 광장 전체를 교역자 전용 운동장으로 하여 운동을 통한 영육쌍전의 이념 구현과 운동 인구 저변확대에 노력하는 것도 매우 선성하고 건전한 일이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