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인성사 60주년을 맞이하여 -

7월 26일은 법인성사 60주년을 맞는 날이다. 삼천리강산을 피의 함성으로 물들이던 1919년(원기 4) 7월 26일, 우리의 9인 선진님들은 혈인의 이적으로 천지신명을 감동시켜 교단 창립의 정신적 토대를 다졌다.
법인성사가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의 사사로운 이욕을 떠난 희생봉사의 정신이요, 분열과 대립이 아닌 단결과 화합의 정신이며, 권모술수를 배제한 인의대도의 정신이다.
그런데 오늘의 세계, 오늘의 사회, 우리의 교단, 우리의 양심 속에 법인정신은 과연 어떻게 살아있는가? 법인정신은 교단 창립의 기본정신이요, 교단 만대에 전승 발전해야 할 원불교 정신이기도 한 것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법인절이지만 금년은 법인성사 60주년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큰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 성령을 위시하여 9인 선진님과 역대 선진님들의 성령이 오늘의 이 교단을, 법인정신이 과연 어떻게 살아있는가를 지금 이 순간도 엄숙히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먼저 개인의 사사로운 이욕을 떠난 희생 봉사의 정신이 이 세상과 사회에 과연 얼마나 빛나고 있는가. 세계 에너지 위기나,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양극화 현상은 과연 희생봉사 정신의 발로인가. 교단을 이끌어 갈 핵심체인 전무출신들은 과연 불타고 있는가. 개인의 이익과 명예, 안일과 욕망의 충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지는 않는가.
세계 에너지 위기의 극복은 산유국이나 소비국이 다 같이 희생 봉사의 정신, 양보와 협조 없이는 어려울 것이다. 교단이 아무리 외형적인 발전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사사로움을 떠난 희생봉사의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발전인 것처럼 보일 뿐이지 참 발전은 아닌 것이다.
분열과 대립을 떠난 단결과 화합의 정신은 또 어떠한가. 상호 이해의 상반에서 오는 분열과 대립은 어쩌면 인간 사회의 영원한 미해결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개인과 개인, 사회와 사회, 국가와 국가 간에 그칠 줄 모르는 분열과 대립의 악순환, 그것을 과감히 물리치고 화합과 단결을 가져오려한 것이 법인정신이다. 인간사회에는 그 어느 곳이나 분열과 대립이 꿈틀거리고 있지만 종교단체의 분열과 대립은 더욱 심한 느낌을 준다.
지금 우리나라는 북한 공산주의의 위협 앞에 국론통일을 가져와야 하고, 국민 총화를 이룩해야 한다. 이러한 일에 앞장서야 할 종교단체가 오히려 분열과 대립이 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법인성사 60주년을 맞으면서 우리 교단은 과연 엉ㄹ마나 화합과 단결을 잘 하고 있으며, 나와 너 사이에, 이 기관과 저 기관 사이에 과연 얼마나 교단 발전이란 최대 공약수를 찾고 있는가를 거듭거듭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권모술수를 배제한 인의대도의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9인 선진님들은 혈인기도를 울리면서 「인도는 인의가 주체요, 권모술수는 그 방편이며, 인의의 대도가 세상에 서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나 권모사술이 세상에 횡행하여 대도가 크게 어지럽다.」고 하였다.
과연 이 세상에 인의대도는 어디 가고 권모사술l 횡행하는가. 강자 약자 진화상 요법을 모르는 데에서 남을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선의의 경쟁사회가 아니라 약탈한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개인의 출세를 위하여, 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권모술수라는 방법이 등장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혈인정신의 참 뜻은 이러한 권모술수를 물리치고 인도정의를 확립하자는 데 있는 것이다. 권모술수를 능사로 삼거나 방편으로 착각하는 자, 그는 사회의 독버섯이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비방편이 자라나고 인의대도의 피가 뜨겁게 타오를지언정 권모술수의 잔꾀가 자라나서는 안 되겠다.
1919년, 조국의 독립을 외치던 삼일운동의 만세소리 따라 일체 생령을 구제하겠다면 9인 선진님들의 법계에 사무친 그 혈인정신을 되새기며, 인의대도는 어디로 갔는가, 단결과 화합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희생봉사의 정신은 살아있는가를 우리도 엄숙히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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