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항타원 이경순 종사 일화

『나무도 뿌리가 튼튼해야 잘 자랄 수 있다.
교단도 마찬가지로 총부가 튼튼해야 전 교단이 두루 발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총부사업을 먼저 해야……』
<사진설명: 대구 교도소를 방문, 재소자들에게 법설을 하고 있는 생전 시의 항타원 종사>
11월 11일 교화부 주관으로 총부 대각전에서 항타원 이경순 종사의 일주기 기념제와 「항타원 종사 문집」출판기념법회가 있었다. 보은하며 부처이루는 서원과 중생제도의 사명감으로 생애를 불태우다 조용히 열반한 출가위 성자.
겸손과 낱 없는 자비훈풍으로 몇 억 겁의 업력이라도 녹혀주던 법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던 항타원 종상.
대종사님을 받들었던 그 정신 그대로 역대 종법사님을 받들었고 법맥과 신맥을 정통으로 이어 교단 만대에 길이 귀감이 되게 하였으며 그 백척 불굴의 신성은 삼세를 꿰뚫었던 것이다.
평범하고 별스럽지 않은 일도 그 가치를 높이 드러내주고 살려 쓰던 덕화, 자애와 의리로 바른 길을 인도하는 길잡이였다. 그러기에 심천(心天)에는 흑운이 걷혔고 혜월이 솟았던가?
여기 항타원 종사가 남기고 간 일화는 수없이 많으나 몇 편만을 실어본다.
□ 대구 삼덕동에 교당이 있을 때, 당시 변호사인 함노봉(현재 신촌)씨 댁이 교당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항타원 종사는 이들 내외의 인간을 위해 여러 해를 두고 조석 심고를 올리고 대재 후면 꽃을 보내는 등 정성을 쏟았다. 3년의 세월이 흐른 후 원기 43년 드디어 부인 조도운행씨가 입교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함노봉씨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시 2년이 지난 어느 날 항타원 종사는 교당과 함노봉씨의 집 사이에 흐르는 하수구를 직접 청소하고 있었다. 이에 함노봉씨는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 동안의 침묵을 깨고 스스로 입교 절차를 밟게 되었다.
『과연 훌륭한 어른이 청초한 몸으로 더러운 하수구를 직접 청소하고 있다니 얼마나 희생적인가 저 분을 마음의 스승님으로 모셔야겠다.』
평소에 몸이 약한 함노봉씨는 교당에 다닌 이후로 좌선을 하며 수도인의 일과를 지키기에 정성을 들였다. 그동안 즐겨 피우던 담배도 끊게 되었다. 부인 조도운행씨는 남편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였고 이를 본 항타원 종사는 『두 사람의 힘이 뭉치면 함선생의 건강이 빨리 회복될 지도 모릅니다.』하면서 3년을 한결같이 기도에 정성을 들였다.
이들 부부는 서울로 이사하여 신촌교당을 창설하는데 그 주역을 담당했던 것이다.
□ 『나무도 뿌리가 튼튼해야 잘 자랄 수 있다. 교당도 마찬가지다. 총부가 튼튼해야 전 교단이 두루 발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총부 사업을 먼저 해야 한다.』
이것이 항타운 종사의 교단관이었다. 그래서 어떤 좋은 물품이나 금전이 들어오면 뿌리인 총부를 향했던 것이다.
초량교당 재임 시절 조준숙 씨가 어느 날 교당을 찾아왔다.
『제 딸 지정이를 선생님의 상좌로 삼아서 잘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정이가 총명하지요. 같이 잘 지도해 봅시다.』
『상좌로 받아주셔서 선생님의 옷 한 벌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고마워요. 그러나 제 한 몸을 위해서보다도 더 큰 복을 지을 생각은 없나요. 지금 동산선원에서는 장차 교단의 주인이 될 인재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원 유지 대책이 서있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옷 살 돈에다가 보태어 동산선원 유지 답을 마련해 주었으면 교단을 위해 얼마나 좋은 일이겠어요.』
『그럼 선생님 말씀대로 해보겠습니다.』
이리하여 처음으로 동산선원 유지답 2필지가 마련되었다.
□ 원기 63년 항타원· 달타원 두 형제분이 서울에 갔었다. 이 때 원남 송경심씨는 남산에 있는 외교 구락부에서 식사를 대접하려고 마음먹었다. 외교 구락부는 외국 귀빈들이나 국내의 고급 손님들이 잘 가는 곳으로, 자리도 오래전부터 예약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음식값 물론 비싼 값이다. 항타원 종사는 이처럼 호화로운 음시을 대접하려는 뜻은 고맙지만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양타원은 한국 여성계의 인물이지요. 우리 교단에서도 재가 교도로서 법사위에 오르신 분이요 대호법까지 되신 분이지요? 우리 형제를 대접하시겠다는 것은 고마워요. 그러나 우리 대종사님의 정신이 그런 것이던가요?』
『그야 물론 아니지요.』
『평소 양타원님이 얼마나 검소하신 가도 알아요. 그러면서도 이번 우리 형제를 위해 꼭 한 번 호화스런 자리를 베풀어 주겠다는 것이 사치가 아님도 알지요. 그러나 오늘날 이 지구상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수억이 넘고 굶어 죽는 사람도 수 백 만이 넘는다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죽어 썩어질 이 몸을 위해 비싼 음식을 먹일 수 있겠어요. 그러니 예약을 취소하세요.』
단호한 항타원 종사의 태도에 그만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 지난해 추계 교무 훈련 중 일요일 항타원 종사는 장경진, 이성택, 신명교 교무를 불러 전주양로원을 방문했다. 허순명화 할머니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고 권성천 원장에게 감상자와 돈 14만 원을 건넸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