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정부패 일소에 부쳐 -

부정부패 시비가 선거 「이슈」로 등장하여 우리의 이목을 시끄럽게 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현 국무총리는 취임 초부터 서정(庶政)의 조용한 쇄신(刷新)을 내걸고 지금도 꾸준히 수술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 성과를 기대해 보기로 한다. 지상에 빈번하게 부정의 적발과 제재가 보도되고 있으며 그것을 접할 때마다 공분(公憤)을 금하지 못하게 된다.
부정부패는 그 미치는바 해독이 심각하고 광범위하여 국민의 관심과 증오가 큰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책임을 직접 당사자에게만 돌릴 것은 아니고 그럴 수 있게 협력해 준 일반 국민에게도 책임의 일단을 돌려야 할 것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직접 대상자와 일반 국민이 모두 같이 크게 반성하고 다짐함으로써 그 근절을 기해야 할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지난(至難)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거의 주간화 된 단속이나 적발이 있을 때마다 일시적으로는 수그러질지 모르나 얼마 가지 아니하여 되살아나곤 하는 골치 아픈 존재가 부정부패인 것이다.
부정부패의 원인을 따져보면 결국 오욕의 상승작용에 의하여 사람의 양식(良識)은 기능을 정지하고 정의· 불의의 판별력이 마비되어 갖가지 죄악이 저질러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힘으로 누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요, 제도적인 조치로써 해결되는 일도 아니다. 일시적인 호도(糊塗)책으로 강압하면 부정부패는 음성화되고 교활성을 더하여 가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는 부정부패의 근절책으로 마음의 혁신을 내걸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그 본연의 광명을 되찾게 되면 오욕에 의하여 흐려졌던 시력이 회복되어 올바른 길을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의 혁신을 가져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국민교육을 통하여 어려서부터 정사의 판별력을 길러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운동에 의하여 국민의 올바른 자세를 강조하고 분위기를 조성하여 탈선을 방지하는 수도 있을 것이며 제도적으로 규제하는 방안도 있겠고 엄한 형벌로써 위혁(威?)하여 일벌백계의 실(實)을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 방법들은 대증(對症)요법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요 마음을 근원적으로 혁신하는 길은 도학공부의 창달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무엇을 생각했다고 해서 무엇을 깨달았다고 해서 즉시 그것이 실천에 옮겨지지 못하는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아는 것과 실천과는 당연히 일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타성과 현재의 유혹과 본래의 몽상에 의하여 얼마든지 변모하는 것이다. 도학은 이러한 갈피 못 잡는 마음을 길들여 안정을 얻게 하고 판별력을 길러주고 정사(正邪)를 분간하여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을 북돋아준다. 국민운동이나 제도나 형벌이 타율성이 강한 방법임에 비하여 도학은 어디까지나 자력의 양성으로 자율적 선택과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우리 교단이 거금 반백년 전부터 제생의세의 대 이상을 실현할 것을 목표로 삼학공부의 길을 마련하여 오늘에 이르른 것도 개인의 성불과 더불어 병든 사회의 치료를 위하 것이었다. 세상의 병 가운데 가자 무서운 것 중의 하나가 부정부패 병임을 감안할 때 우리는 우리의 활동의 초점을 이의 치료에 맞추어야 할 것을 절감하게 한다. 우리는 보다 많은 사람이 도문을 찾도록 하여 스스로 마음공부의 길을 잡게 하여야 할 것이며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많은 기운이 점차 번져감으로써 사회정화의 세척제가 되게 하여야 한다.
스스로 선참을 자처하는 모든 교우는 더욱 분발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솔선수범으로써 모든 적폐의 적제에 앞장서야 하며 국가는 도학 창달이 사회 정화의 첩경임을 깨달아 방방곡곡이 마음공부의 도량화 되고 산야대지가 정의의 광명으로 편만하도록 도문 지원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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