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전체를 가슴에 품으려는 사람은
세상의 오욕 쯤은 무시해 버릴 수 있다.
구름이 걷혀야 햇빛이 찬란하게 빛난다.

③ 의
무엇인가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종사님께서 일원의 진리를 깨치게 된 출발점은 삼라만상과 인간의 온갖 일반에 대해서 큰 의심을 품고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근세 이성론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르네 데카르트」(1596~1650)는 『우리가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불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모조리 다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철학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데서 출발했던 것이다.
서가모니 부처님은 인간의 생· 로· 병· 사의 현상을 보고, 왜 인간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늙고 병들어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의심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진리를 깨칠 수 있었던 것이다. 조그만 일 한 가지라도 무심히 보아 넘기지 말고 세밀히 관찰하며 의심하는 데서 알아진다.
책 속에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우주만유의 근본 이치와 인간의 생· 로· 병· 사와 죄· 복· 고· 낙에 이르기까지 큰 의심을 가져서 그 의심을 깨치도록 공부해 간다면 우리도 대종사님과 같이 큰 진리를 깨칠 수 있을 것이다.
④ 성
정당한 일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결 같은 정성을 바쳐야 한다. 정성 없이는 무슨 일이든 성공하기 어렵다. 밥을 지을 때 정성이 없으면 태워버리기 쉽다. 농사를 지을 때 정성이 부족하면 좋은 수확을 얻을 수 없다.
여기 한 채의 집을 짓는다고 하자. 나무도 있고 「시멘트」도 있고 철근도 있고 도구도 있고 건축가도 있다.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똑같은 기술을 가진 건축가가 집을 짓는 경우에는 건축가의 정성에 따라서 집이 잘 지어지기도 하고 못 지어지기도 한다. 음식을 하나 만드는 데에도 똑같은 재료와 요리법으로 해도 정성을 얼마나 들였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조그마한 일 하나에도 정성이 필요하거늘 하물며 삼학공부를 잘 해서 부처가 되려는 사람이 꾸준하고 지극한 정성이 없다면 성공하기란 어림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되기 위한 삼학공부에 꾸준하고, 지극한 정성을 바쳐야 하고 우리 자신의 생활을 해결하는 데에 큰 정성을 계속해야 하고, 세상에 유익한 일을 하는 데서 끊임없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
바르고 굳센 믿음, 용기 있게 정진하는 마음,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의심, 한결 같이 성실한 마음은 삼학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 우리가 잠시라도 잊어서는 아니 될, 항상 같이 있어야 할 것이다.
⑤ 불신
인간은 서로 믿을 수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가족관계 사회관계 국가관계가 다 서로 믿기 때문에 성립된다.
부모가 자식을 못 믿고, 형이 아우를 못 믿는 가정, 국민이 위정자를 못 믿고, 국민과 국민이 서로 못 믿는 불신 사회에서 인간이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
만약에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믿지 못한다면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하물며 진리를 믿지 못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죄를 받는다고 인과보응의 법칙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죄짓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삼학공부를 열심히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삼학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다.
진리를 믿지 못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든 성공하기 어렵고, 그러한 사람은 악도나 지옥에 떨어지기 쉽다.
이와 같이 믿지 못하는 마음은 성공의 길을 막는 장벽이요, 부처가 될 길을 끊어버린다.
⑥ 탐욕
사람은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 그러나 그 욕망은 분수에 맞아야지 지나치다 보면 오히려 실패하기 쉽다.
음식 하나라도 적당하게 먹어야지 지나치게 먹다보면 배탈이 난다. 권력이나 재물도 지나치다 보면 결국 파탄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가장 큰 욕망은 아무런 욕망도 없는 것』이란 역설적 표현이 있다. 대종사님께서도 『사자나 호랑이를 잡으러 나선 포수는 꿩이나 토끼를 보고도 총을 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장 큰 욕망은 세속의 오욕을 떠나야만 품을 수 있고, 가장 큰 욕망은 세속의 오욕을 능히 없앨 수도 있다.
사람들이 오욕에 사로잡힌 모습을 『달팽이 뿔싸움』『도토리 키 다투기』라고도 표현한다. 몇 채의 집, 얼마의 땅,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 권력에 눈이 어두운 것보다는 이 우주 전체를 자기 품안에 안으려는 것은 가장 큰 욕망이며, 이러한 욕망을 가진 사람은 세상의 오욕쯤은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곡식이 무성하면 잡초가 자랄 수 없듯이 큰 이상을 품은 사람에겐 옹졸한 욕망이 일어나지 않는다. 부처가 되어야겠다는 큰 뜻을 품은 사람은 오욕에 얽힌 자질구레한 욕망은 없애야 한다.
⑦ 나(懶)
게으름뱅이가 잘 살기 어렵고, 게으름을 피우고도 무슨 일을 성공하기 어렵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사람은 내일이 되면 또 다시 미루어 한 가지 일도 성공하기 어렵다.
부지런한 사람이 가난한 경우가 드물고, 게으른 사람이 부유하기 쉽지 않다. 「라인강 기적」은 독일 국민의 부지런함에서 이루어진 것일 따름이다.
「시간은 황금」이라 했다. 그 귀중한 시간을 한 순간이라도 아껴 쓰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게으름뱅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 한 치라도 땅을 더 파는 사람이라야 성공한다.
토끼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겼다는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부처가 되고 공부는 한 평생, 아니 영겁을 두고 부지런히 계속해야 한다. 오늘 못하면 후생에 한다는 생각으로 자꾸 미루기만 한다면 부처될 날은 없다.
⑧ 우(愚)
조그마한 일 하나라도 그 이치를 모르고는 잘 하기 힘들거늘 하물며 부처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모르고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눈이 어두우면 길을 잘 갈 수 없고, 진리에 눈이 어두운 마음의 장님은 바르게 살아가기 어렵다.
길을 바로 보아야 잘 걸어갈 수 있듯이, 진리를 알아야 부처되는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열심히 경전을 읽고 스승의 법문을 많이 들어서 진리의 눈을 떠야 삼학공부를 잘 할 수 있다.
불신, 탐욕, 나, 우는 삼학공부를 하는데 방해가 됨으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깨끗이 없애야 한다. 구름이 걷혀야 햇빛이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 것이다.
사은사요는 인생이 걸어가야 할 길이요, 삼학팔조는 부처되어가는 공부길이다.
사은사요는 일원의 진리를 믿어가는 것이요, 삼학팔조는 일원의 진리를 실천해 가는 것이다.
삼학팔조의 공부가 없으면 사은사요의 길을 밟아가지 못할 것이요, 사은사요의 길이 없다면 삼학팔조를 공부한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삼학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신· 분· 의· 성의 네 가지 마음은 꼭 가져야 하고, 불신· 탐욕· 나· 우의 네 가지 마음은 꼭 버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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