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나라에 왕태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그는 발을 베는 형발을 받아 외짝발 뿐이었다) 왕태는 학문과 덕행이 훌륭한 사람으로 사회에 평판이 높았다. 그의 문하에 모여드는 제자는 그 수에 있어서 공자의 제자와 맞설 정도였다.
공자의 제자인 상계는 이것을 보고 공자에게 묻기를
『그 불구자에게는 남보다 뛰어나게 훌륭한 데도 없어 보이는 데 도대체 어떠한 까닭으로 그렇게 많은 제자들이 모여드는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하기를
『그 분 천지만물의 실상을 환히 들여다보고, 바깥 물건에 끌려서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없다. 만물의 변화를 자연 그대로 받아들여 도의 본원을 지키는 분이다. 눈과 귀에 비치는 곱고 추한 것은 전혀 생각지 않는다. 오직 마음을 지극한 아름다움과 즐거움의 덕에서 놀게 하여 만물을 한결 같이 보고, 얻고, 잃음을 상관하지 않으므로 그까짓 발 하나쯤은 마치 흙덩이를 버린 것으로밖에 생각지 않는다.』
상계는 왕태가 수양의 극치에 도달한 것은 이해가 되었으나,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까닭은 잘 알 수 없었다. 이에 대해 공자는 또 이렇게 대답했다.
『그 까닭은 곧 그 분이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고요함을 가진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의 모습을 물에 비추어보려고 할 때에는 흐르는 물보다는 조용히 정지되어 있는 물을 거울로 삼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굳게 가진 사람만이 남에게도 마음의 편안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자는 지극한 덕을 가진 성인의 자세를 이렇게 말했다.
『지인(至人)의 마음 쓰는 법은, 저 맑은 거울에나 비유할 수 있으리라. 맑은 거울은 물체의 오고 감에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미인이 오면 미인을 비춰주고, 추부(醜婦)가 오면 추부를 비춰준다. 어떤 것에도 한결같이 맞이해 주되, 그렇다고 그들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많은 물건을 비춰주지만, 본래의 맑음을 손상하는 일이 없다. 그와 같이 지인의 마음 쓰는 법도 무엇에 대해서나 차별이 없고, 집착이 없이 자유자재하는 것이다.』
명경지수- 맑고 흐리지 않는 거울과, 조용하여 움직이지 않는 물과 같이, 청명하고 움직이는 않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그리하여 저 높푸른 가을하늘을 쳐다보면서 우리의 마음도 명경지수 같았으면 싶어진다.
그 뜨거운 열기와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반백년 성업도 지냈다. 이제 우리는 명경지수 같은 마음을 가진 스승을 갖고 싶어진다. 아니 우리 모두가 명경지수 같은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낙엽 지는 소리에도 진리의 숨결을 들을 수 있고, 알알이 영글은 한 알의 곡식에도 진리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던가를 알 수 있으며, 은혜와 불꽃 속에 인생의 소망이 영겁으로 타들어 갔으면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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