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좌담

때: 1971년 12월 12일
곳: 서울 코스모스 백화점 회장실
참석자
황정신행(수위단원· 한국보육원장)
문동현(중앙교의회의장· 한국종협 부회장)
장수진(청운회 회장· 코스모스 백화점 상무이사)
사회: 조정근(본사 편집국장)
교당 신설 등 교화정책은 신중히
국제적인 발돋움- 지금 실정으로는 어려워
읽히는 간행물이 되도록 힘써야
<황정신행> 모든 것을 안에서만 찾으려 하는 소극적 태도를 버리고 사회전체에서 찾으려고 해야 한다.
<문동현씨> 법당은 예회 보는 데만 사용치 말고 부락회의도 열 수 있게끔 지역사회를 위하여 개방해야 한다.
<사>: 새해는 또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지난 한 해는 퍽 다사다난 하였던 한 해였습니다. 교단내적으로는 반백년 기념사업을 매듭지은 해였으며, 교단 밖으로는 대통령 선거를 비롯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굵직굵직한 일들이 많았고 또한 중공이 UN에 가입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단의 새로운 방향모색을 위해 재가로 계시면서 교단의 일에 적극 참여하심 책임을 맡고 계시는 세 선생님을 모시고 신년 특집 좌담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그럼 먼저, 교단 반백년사를 회고하면서 교단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보람 같은 것을 느끼신 일이 있으시다면 그 말씀부터….
<황>: 교단에 관한 말씀을 드릴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대종사님의 그 유언과도 같으신 많은 법설들이 하나도 어김없이 지금 그림과 같이 펼쳐지고 있음을 볼 때 큰 법열을 느낍니다. 원불교에 입문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보람을 느끼지 못했을 것예요.
모든 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고 참는 마음 기를 수 있었다는 것, 대종사님의 가르침대로 따랐기 때문이죠. 토지 문서 같은 것 휴지조각 된다 하시었는데 이 법문 받들고부터 토지문서에 집착하지 않았기 남의 자식들 많이 기르고 가르칠 수 있었지요. 아마 내가 토지문서에 집착하였더라면 지금 내 많은 친구들처럼 예전의 대문짝만한 문패가 지금은 문패조차도 없는 집에서 살았을 것만 같아요.
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세계와 우주를 일원으로 보고 한 세상 한 일터 한 일꾼의 세계관 사회관 인생관을 아주 뚜렷하게 심어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트이고 의젓합니까. 그러나 우리 반성해야겠어요. 이러한 선사님들의 사상을 말뿐인 것으로 만들고 있는 후진이 되고 있지 않나 말이요. 원불교라는 울타리를 좁게 쌓지 말아야겠어요. 일원을 넓게 그려야겠어요. 타종교와의 악수도 형식이 되어선 안 됩니다. 대중과 같이 호흡해야지요, 지금 사회는 원불교에 대한 기대 큽니다. 「황온순」이란 이름 석 자 아직도 사회에 남아있는 것은 모두 대종사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했기 때문임을 더욱 절감하지요.
<사>: 감사합니다. 모두 대종사님의 근본 가르침이 뭣인가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겠습니다.
문의장님께서는 중앙교의회 의장직을 3선이나 하신 명 의장님으로 공인되어 있으신 어떤 보람을….
<문>: 반백년의 교단사를 회고해 볼 때 지난 10월에 있었던 반백년 기념총회는 행사 중의 가장 큰 행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행히 원불교인이 되었다는 사실과 그 중에서도 이 대회에 직접 참여하여 선진들의 업적을 높이 찬양하고 길이 추모 감사할 수 있었고, 또 지금까지 완비치 못한 것은 앞으로 우리의 힘으로 보완하겠다는 결의를 할 수 있었음을 퍽 다행한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욱 힘차고 굳세게 전진하기 위한 총회를 우리는 치루었습니다. 이제 이렇게 이끌로 가게 하는데 힘을 보탬으로써 더욱 보람을 찾을까 합니다. 저는 10년 이상을 중앙교의회 의장직을 맡고 있으면서 정신적 긴장이 항상 풀리지 않고 있다고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저 같은 부덕한 사람이 그런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음으로써 교단사에 누를 끼치지 않나 하는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황>: 무슨 말씀을… 교단의 보배시오, 명 의장이란 평판이 자자하신데… (일동 웃음)
<장>: 저는 15년 전에 원불교에 귀의하였습니다. 제가 귀의한 동기가 있어요. 그러니까 15,6년 전에 미국에 갔었는데 한 미국인이 이렇게 물어요. 동양인은 철학을 갖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당신의 생활철학은 무엇이요? 저는 대답을 못했어요. 그래 귀국해서 원불교를 만나게 되었지요.
원불교는 한국적이면서도 범세계적 종교였다는 점, 사생활을 충실히 하면서 공익을 위해서 일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이 저로 하여금 귀의케 했다고 봐요.
지금 저는 어떤 순, 역경의 환경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것은 원불교의 무시선 사사불공의 철학이 제 생활의 이념이 되고 좌표가 되어버렸어요. 그래 지금은 제 주위에서 모두 저를 가리켜 「원불교 사람」이라 일컬어 주고 있지요. 그러니 더욱 취사가 조심되고… 이렇게 된 것이 큰 보람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사>: 예, 좋았습니다. 그럼 「좌담 주제」로 들어갑시다. 「새해에 바라는 교단의 방향」입니다. 순서 없는 것을 순서로 자유스러운 말씀이 되었으면 싶습니다.
그럼 먼저 교화 면을 이야기 해 주실까요?
<문>: 「교화」는 바로 종교단체의 생명력입니다. 때문에 교화의 정책이나 방향 제시 등은 그 종단의 생명체를 다루듯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모든 종단이 거의 같습니다만 우리 교단도 남자들이 많이 드나드는 교당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교역자에서 일반 교도에 이르기까지 남자가 너무 적습니다. 저는 당국에 지혜보다는 용기를 저의 입장에선 주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교당 신설 문제를- 한 교당이 새 교당 하나를 세워 그 공적을 찬양해주고 그러지 말고 그 지역의 기성 교당 전체가 필요한 지역에 하나씩 세워가는 방향으로 바꾸었으면 합니다. 「내 성적이다 네 성적이다」하는 것 지양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장>: 어쩌다 원불교가 여성 불교화 되었느냐? 참 중대한 문제올시다. 여자 포교사가 많아서 그러는거냐? 문의장님 말씀대로 이런 것은 당국에서 심사분석 되어 있겠지요.
매사 남자들이 원불교를 조금만 익히면 여자들보다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되어 있다고 저는 봐요. 당국은 검토만 하고 있지 말고 더욱 과감한 그리고 종하적인 실천이 있길 고대하겠어요. 그리고 여기에 대하여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는데.
첫째 교도수를 낱낱이 헤아리지만 말고 세대별로 헤아렸으면 해요. 그래야 가정 가정이 모두 교우가 되고, 그래야 가정이 법당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자연히 교무선생님들 출입이 자유스러워지고, 남자들이 교당에 나오지 않을 수 없지요. 온 가정이 원불교화 될 때 이웃 가정에 대한 포교도 가능하다고 보지요.
둘째로 간행물을 일반인도 볼 수 있게 편집체제를 고치고 많이 해서 많이 보급해야겠어요. 지금 「원광」이나 「신보」의 내용, 일반인들이 무슨 흥미 있겠어요? 저는 직장에서 20부씩 무료로 배부해 주고 있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만 보지 않는 것 같아요.
<황>: 교역자 양성문제 못지않게 재훈련 문제도 중요하다고 봐요, 몇 해 이상 훈련을 받았느냐에 따라 인사에도 반영시켜야겠다고 봐요. 지금 여자 교역자들 훈련은 아주 잘 되었다고 느껴지는데 그것은 이렇다 하는 사회의 저명인사들도 총부에 다녀오면 감명을 많이 받고 왔다며, 이야기 하는데 여자 교역자들의 조직적인 일상생활과 질서 있는 생활 자세에서 받고 온다고 그래요.
그런데 오래 접하여 보면 너무 소극적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해요. 우리 집안끼리 소류모의 생활에서 실수 없이 산다는 것, 그것도 참 중요하지만 거기에 만족하면 안 되겠어요.
또 교당의 활동을 주무급들만 위주로 하는 교당이 있다면 이제 탈피해야겠어요. 그리고 그 「계」좀 교당에선 제발 그만 두어야겠어요. 1년쯤 교당 나가다 그만 둔 한 교우가 이야기해요. 법회가 끝나고 나면 교당에 모여 앉아 계돈뭉치가 왔다 갔다 하는 것 보고 나기가 싫어졌다고.
55주년도 다 치루었으니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하겠어요.
서울에 교당 많이 생겨야 하겠어요. 그러나 수 늘이는 것 좀 쉬고 대표 교당 될 만한 교당 하나 세워야 한다고 저는 봐요. 그것 문제없다고 봐요. 16개 서울교당이 합심하면 안 되겠어요? 반백년 후로는 국제적으로 도약한다면서, 지금 이 꼴 가지고는 부족하지요.
<사>: 다음은 청소년 문제로 이야기를 해주시지요.
<문>: 이번에 일본 불교계의 초청을 받아 타 종단 대표들과 함께 일본에 가서 그들 각 종단들의 청년운동을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습니다만 역시 청년운동을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습니다만 역시 청년운동을 하려면 재정문제가 뒷따라야 한다고 더욱 느끼었습니다.
우리 교단은 교의회에서 예산 심의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로 청년회 예산이 거의 없다는 것임니다. 앞으론 이런 점에 유의해서 재정적 뒷받침을 예산상으로 해주어야겠어요.
지금 우리 청년회의 조직에 대해서 이렇게 고쳤으면 하는 것이 있는데
첫째, 청년 조직이 일반 청년과 대학생을 함께 묶어 청년회라 하는데 이것 바로 고쳤으면 해요. 청년회와 대학생회로 말입니다.
둘째, 서울지구 청년회와 서울사무소와의 관계예요. 중앙 청년회의 지시도 받지만 서울사무소의 지시도 받도록 해서 행정적으로 하자가 생기지 않아야겠다고 그래야 또 건실한 발전도 도모된다고 봐요.
<황>: 먼저 청년회 측에 부탁이 있어요. 청년회를 하시면서 「원불교」를 너무 강하게 표현하지 않았으면 해요. YMCA 조직 봐요. 거기에는 신자보다 비신자가 더 많아요. 그러다가 다니면서 자연히 저도 모르게 기독청년이 되는 거예요. 지금 우리 청년회는 꼭 원불교에 입교해야만 회원이 되게<5면으로 넘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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