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절을 이렇게 맞자
팽배한 이기심 인명경시 사상 낳아
살신성인 받들어 공익생활 체험을

 칠원이십육일 대종사께서 다시 단원 諸人에게 이러 가라사대 「제군들이 지금까지 기도해 온 정성은 심히 장한 바 있으나 나의 증험하는 바로서는 아직도 천의를 움직이는데는 그 거리가 요원하나니 이는 그래도 제군의 마음 가운데 어떠한 사념이 남아 있는 연고라 제군이 사실로 인류세계를 위한다고 할진댄 제군의 몸이 죽어 없어지더라도 우리의 정법이 세상에 드러나서 모든 창생이 도덕의 구원만 받는다면 조금도 여한이 없이 그 일을 실행하겠는가」단원은 일제히 「그러하겠습니다.」…중략…또한 저희들의 희생한 공덕으로 만약 시방세계 중생의 영원한 행복을 받게 된다면 저희들에 있어서는 일마다 큰 사업이 되겠습니까…중략…그들은 가지고 나온 단도를 청수상위에 나열한 후 일제히 사무여한의 증서를 서서 각각 백지 장을 찍어서 상에 올리게 하시고 결사의 의미로서 일제히 伏地(복지)심고를 하게 하셨든 바 지장 찍은 자리가 혈인으로 변하였던 것이다」
 이상은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창업 교단에서 구인선진들이 혈인의 이적을 나타내는 법인성사의 상황을묘사한 창건사의 한 부분이다.
 금년으로 56주년의 법인기념을 맞게 된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우리는 기념식을 갖고 선진들의 살신성인의 정신을 기리고 있지만 자칫 하면 의례적인 겉치레 행사에 머물기 쉽고 형식적인 타성에 젖어 왔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더욱이 최근 우리의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부정 부패와 황금만능 물질 만능의 타락현상이 급증하고있으며 인명경시 윤리부재, 불신아집의 비리가 우리 주변에 팽배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무엇보다 먼저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의 허심탄회한 반성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법인 절을 맞는 자세를 생각해 보고 싶다. 첫째는 이타생활을 체험하는 날이 되도록 하자. 인간은 본래부터 지니고있는 본능적 욕심이 있기 때문에 누가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더라도 이기심으로 가득찬 생활이 되어왔다. 더욱이 물질지상주의의 사고가 크게 판을 치고있는 현실에서는 이타생활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손해 보는 짓으로 가볍게 웃어 넘기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심은 또 다른 이기심을 낳고 타의 이기심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인심은 각박을 넘어 살벌하기까지 하게 된다. 그와 반대로 이타생활은 상생과 조화의 원리로써 마치 촛불에서 불을 붙여 갈지라도 어둠은 두루 밝아지면서도 처음의 촛불이 없는 것처럼 결국은 자기와 이웃이 함께 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둘째 공익을 체험하는 날로 맞고 싶다. 자기 가정, 자기 친족만을 이하는 생활이 사익생활이라면 사회, 국가, 이웃을 돌아 볼 줄 아는 생활이 공익생활이다. 회사는 망할지라도 사장은 부유해지고, 이웃은 가난할지라도 재산도피나 방탕생활문화재도굴을 다반사로 하는 몰지각한 재벌들. 자기 권좌를 위해서는 백성이나 구성원들의 생명쯤 파리 목숨같이 여기는 세계의 독재자들, 그들에게는 공익이란 한낱 허세의 도구요, 위장의 수단으로 보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사익은 올바른 공익생활의 체험적 반석 위에 이룩될 수 있다.
 구인선진님들이 인류의 행복을 위해 살신성인을 징험한 이날, 칠월 이십육일! 우리는 내가 먼저 손해를 볼지라도 상대방이 이익을 본다면 그 일을 단 한가지라도 체험하여 보자(利他)生活). 또한 정치인은 국가와 국민을, 사장은 회사와 사원들을 교장(총장)은 학교와 직원과 학생을 교역자는 교단과 교도를 위하여 단 한가지라도 공익을 실현하는 일을 하여보자.
<원광대 전임강사ㆍ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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