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그 사상
규기의 오성종법을 크게 지향
유식철학으로 중국 대승불교에 공헌
본성 평등 인과 따른 차별 인정

 원칙은 대체로 AD, 613년에서 696년까지 생존하였다. 그는 신라의 왕손으로서 3세때 출가하여 15세 때에 당에 유학하여 법상과 승판 2사에게 유식 학을 배웠다 한다.  원래 천자가 총명하여 육국의 언어(言語)에 통하여 그 명성은 천청에까지 미쳐 태종ㆍ문제의 애호로 득도하게 되었다. 노후 서(西) 명(明) 사(寺)에 머물었음으로 서명이라 일컫기도 한다 그 당시의 어제인 측천무후는 법사를 존중하기를 석가의 재림과 같이 하였다하며 승공 년 중에는 신라 신무왕이 여러 차례 법사의 귀환을 요하였으나 무후는 종시 듣지 않았다고 하니 그 신임도는 가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그 후 낙양불원기사에서 만세통천 원년(696년)에 84세로 생을 마쳤다.
 한인으로서 승랑은 삼논 철학으로, 그리고 원칙은 유식철학으로 중국의 대승불교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원측은 중극 자은 파의 텃세로 시기와 중상을 입었다. 항아를 들어보면 당시 유식 학의 소의 경전인 아유식논을 번역할 때 현장은 규기ㆍ보광ㆍ가상ㆍ신방 등 4인으로 하여금 윤사 집필 검문 사의의 일을 맡아보게 하다가 뒤에 규기만 맡게 하였다는데 규기가 성유식론을 집필하기 위하여 단독으로 현장의 강을 듣고 그것을 선록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방청을 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원측이가 몰래 문지기에게 돈을 주고 들어와서 도청하여 의장을 집철(輯綴)하여 또한 논지를 유통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현장의 강이 파(罷)할 무렵에 원측이가 서명사의 종을 울리어 승도를 불러모아 자기가 유식의 강을 한다고 외쳤다는 기록이 송고승전 권4 규기전에 잇는데 이것은 언어도단이다. 왜냐하면 원측의 유식사상의 내용이 규기의 그것과 다른 것이요, 또 이론을 떠나 측천무후에 의하여 불고 같은 존숭을 받은 원측의 인품이나 학력으로 미루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원측의 교학이 중국인의 텃세에 밀려 중국에 가 아닌 서역 돈황지방을 중심으로 각광을 받았고 또 우리 땅에서는 도증과 대현 등을 전승하여 그 빛을 발했다.
 원측의 근본적 연구태도는 대승불교의 중의를 천명함에 있었다. 대승불교의 큰 흐름의 사상은 중관과 유식이다. 중관 사상은 반야공관에 입각하여 사물의 본질을 무자성, 공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유식사상은 현상의 본질을 공으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유유무의 대립을 초월한 절대유로서 파악하려 한다. 원측은 그 자신 유종에 속한다고 할 유식철학을 주로 하면서도 반야의 공종을 또한 두둔하여 반야심경 소와 반야심경 찬을 사술한 것을 보아 도구 태여 한 종파의 이를 세우며 변호하는데 있지 않았다. 반야심경 찬에서 원측은 공과 유와 무의 이종편집을 서거하는 것이 교의 일어남이라고 하며 또 불멸 천년 후에 남인도 건 지국에 청변과 호법이 일시에 출세하여 청변은 공에 집착하여 유를 제거하므로 써 유집을 없애려 하였고 호법은 유를 세워 공을 제거함으로써 공집을 없애려고 한 것은 모두 유정으로 하여금 불법을 깨닫게 하려함이니 공종이나 유종이나 불의를 이루기는 같으며 공득 유라 역공역유 하여 이체순성하는 것이요, 비공비무하여 중도에 계합하는 것이 불법의 대종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원측은 공종이나 유종이나 다 같이 공유의 양집을 비판하면서 중도를 세우고 조회를 나타내는 것이 그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원측의 유식철학에 나타난 몇 가지 그이 독자적인 견해를 보면 유식을 분설 함에 있어서 고래로 안혜는 자증일분설 난타는 상견이 분설, 진 나는 상견에 자증 가을 한 삼분설, 호법은 상견과 자증에 다시 증자증을 가한 사분설을 주장하였다고 하여 「안난진호 일이 삼사」로 전하여 오는 것이나 원측은 불경의 삼계유심을 일분으로 무착과 세친의 상급 견을 이분으로, 진나를 삼분, 호법을 사분으로 보고 있다. 또 심의 식의 삼종별 의에 관해서는 집기심 사량심 요별 식을 유별하여 그것이 제팔식, 제칠식, 그리고 나머지 육식에 해당함을 밝혔으며 육식을 일체로 보고 칠식과 팔식을 번체로 보았으며 구식은 따로 필요가 없다고 하여 진 체의 구종식을 비판하고있다. 그리고 오종성에 관한 해석은 규기의 자은 종파의 사상과 뚜렷이 대립3된다. 즉 규기는 오성각별설의 입장을 취하는데 반하여 원측은 일성개성설의 편에 선다. 오종 성이란 성문정성, 독각정성, 보리정성, 삼승부정성 무성유정성인데 그 중에서 결정대승종성이라 할 보리정성은 무루종자를 구유하여 돈오돈기에 속한다. 무성유정성은 삼승의 무루 종자를 구유하지 못한 만큼 아무리 노력하여도 인천 선과는 얻을 수 있으나 성불은 못한다. 삼승 부정성은 회향으로 점오점기가 가능한 경우도 있으나 보살종자를 가지지 못하여 불성을 결한 것도 있다. 성문종성과 독각정성은 돈근과 이근의 차이는 있으나 같이 정성이승이어서 성문과나 독각과를 증할 수 있는 종자를 구유할 뿐이라는 것이 규기의 자은 종파의 해심밀경에 의거한 주장인데 반하여 원측은 중생의 본성은 본래 평등하나 오직 인과의 자별이 있을 뿐이며 이른바 무성정성의 낮은 근기를 가진 중생들도 필경에는 성불할 수 있다는 일성개성성을 고취하였다. 이러므로 원측을 헐뜯는 무리들은 오성종법은 규기만 알고 원측은 모르는 것처럼 꾸며 말하나 여기서 우리는 원측이 오성종법을 모른 것이 아니라 그 의의를 살리면서 지양하려고 한 것임을 알아야겠다.
<부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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