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中道의 해명
논리적 가치의 최고점
현대 인류 총화의 바탕은 중화
중도의 본질은 변증법의 활용으로 양극의 변을 초극
석존의 중도는 정견을 비롯하여 正定에 이르는 팔정도
대승불교는 중국을 거쳐 동진, 한국불교는 호국불교특색
불교 초기의 계율중시는 교단의 엄숙과 소승에 떨어져
김두헌 박사 <학술원 회원>
○…제3회 한ㆍ일불교학 학술회의가 원광대에서 10월 25일부터 26일까지 양일간 열렸다.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이번 불교학 학술회의는 「불교와 인간의 문제」란 주제로 김두헌박사(학술원회원)의 「중도의 해명」의 기조강연과 한ㆍ일 양국불교 학자 8명의 주제 강연이 있었다. 여기 9회에 걸쳐 발표된 내용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1>
『비구들이어, 출가한 비구들은 두 극단의 二邊을 피할지어다. 이 이변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는 욕락에 탐착함이니, 저렬, 야비, 범우의 소위이니 성스럽지 않고 의롭지 않은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의 행고에 젖어있으니 이도 고통스러운 일이라 성스럽지 않고 의롭지 않으니라. 비구들이어, 여래는 이러한 이변을 버리고 중도를 현등각하였노라. 이는 눈을 열고 智를 일으키어 靜寂, 神智, 正覺, 涅槃에 이르는 도움이니라』 이는 세존이 성도하신지 첫 번째 설법을 전한 初轉法輪經에서 中道(madhyamapradipad)를 해명한 말이다. 여기에 비구들은 일찍이 석가모니가 왕궁의 환락을 버리고 출가하여 고행 6년 동안 동행하였던 동향의 교진여 등 5비구니였다. 그런데 석존이 고행을 떠나 修定에 전향함을 못 마땅히 여겨 북방의 베나레스 녹야원으로 떠나간 것이었다. 그러나 석존은 고행을 버리고 수정의 길을 취한 것이 극단의 이변을 지양하여 중도의 정각에로 가는 첫 길이었다. 고행이란 그 당시 널리 보급되어 있던 수도의 방식이었다. 그런 중에도 수정은 또한 저버릴 수 없는 길이기도 했었다. 거기에는 四禪定 四無色 滅盡定 등이 갖추어 있는데 대체로 일심부동의 순수 무잡한 수행의 방도에 불과함으로 고행과 동렬의 의미에서 석존은 이도 역시 초탈해야만 했었다. 이로써 석존은 중도의 정각을 이룩하였는데 5비구들은 그저 수정에 머무른 것으로 오해한 셈이다. 석존의 중도는 正見을 비롯하여 正定에 이르는 팔정도에 통한 것인데 여기에 正智와 正解脫의 이지를 더하여 십성도라고도 하거니와 거기에는 戒, 定, 慧, 解, 脫, 解脫智見의 오분법신을 이룩하고, 이 법신관을 근본으로 삼아 苦, 集, 滅, 道의 사성체를 완수하게 된다. 불타는 입멸에 즈음하여 최후의 제자인 수발타라에게도 중도를 일러주었고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사성체의 법륜을 설하였다. 그리고 보면 불타의 일생은 발심수행 보제열반 행지도환으로 일관하였으니 여기에서 초전법륜경에 이른바 성스럽고(ariya) 의로운(attha) 도리가 성숙하였다. 이제 초전법륜경은 불설의 기반이 되었기에 佛說轉法輪經(義淨의 석경)이라 하였고 그저 轉法輪經(雜阿含經)이라고도 하였으며 상응부의 제경에는 如來所說(Tathㆍgatena Vuttㆍ)이라 하였으니 과연 중도의 교설은 전법륜의 최승법설임에 틀림이 없다. 석존은 사체의 교리를 세 번 말씀하셨던 것을 삼전법륜이라 하는데 示轉, 勸轉, 證轉이 바로 그것이었다. 시전이라함은 고, 집, 멸, 도가 이러이러하다고 그 모습을 보인 것이요, 권전이라 함은 고를 알아 집을 끊고 멸을 체득하여 도를 닦으라고 권고한 것이요, 증전이라 함은 석존 자신이 몸소 실증함을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석존이 녹야원에서 성문들에게 4체를 증법할 때 삼단계로 말한 것이니 이것이니, 이것이 바로 三轉十二行相이었다. 이로써 성문4체설은 초전법륜의 기반으로 되었다. 어째든 간에 중도는 사체, 반약, 성실에 연결되어 불타의 최승법설로 되었는데 대승의 선달인 용수는 중도설을 가장 두드러지게 체계화하였다. 그는 초전법륜경의 중도설을 기반으로 삼고 아함경의 유무중도설을 종합하여 그의 명저 정법론에 근본중송을 더하였다. 이제 일체법공의 근거에서 三寶는 緣起, 空, 假, 中의 사체설로써 성립되고 삼론 천태를 비롯하여 후세의 대승은 거의 가 다 여기에 근거하게 되었다.
<2>
 중도의 본질을 따지고 보면, 이는 곧 변증법의 활용이다. 양극의 이변을 초극한 것은 바야흐로 정반합의 구현임에 다름이 아니다. 여기에서 상즉의 이론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煩惱卽菩提 生死卽涅槃 色卽是空 一卽多 등등으로 표현된 것이다. 동양의 윤리로서 존중시되어온 중용의 도리는 바야흐로 변증법에 근거한 중도임에 다름이 아니다. 서양에 있어서는 일찍이 그리스 철학에 변증법을 내세우고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통하여 이를 대성하였고 그의 뒤를 이은 플라톤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윤리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 후로 변증법은 오랫동안 전해오다가 근세에 이르러 도이취의 헤겔이 이를 우주와 인생에 걸쳐서 굉장한 철학체계를 이룩하였다. 그의 변증법은 어디까지나 관념론에 서있었는데 그 후로 마르크스가 이를 유물론으로 뒤집어엎어서 변증법을 활용하여 공산주의를 이루어냈다. 이로 인하여 세계의 이념적 대립을 일으키었다. 여기에는 진정한 법성의 도리를 망각하고 물질문명에 기울어져 변증법을 오용하고 만 것이다. 다시 말해서 거기에는 가치의 분별을 망각한 것이다. 이제 가치론적으로 변증법을 활용해야 하겠으니 그것은 곧 중도를 일으키는 일이겠다. 불교가 발달하는 중에 교계의 내외에는 사상적으로 매우 복잡해졌다. 용수는 이제 이를 승화하려고 나섰는데 우선 교내로 소승 즉 有部宗의 실유사상을 타파하는 데에 無相皆空을 근본으로 삼았다. 이 空의 사상은 바로 중관론이요, 무상개공이라 함은 중도실상임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 중도실상을 구현하는 첫 길이 破邪顯正이었다. 삼론종에서는 삼정 또는 삼중을 말하는데 對偏正, 盡偏正, 絶對正이 바로 그것이다. 대편정이라 함은 병에 대해서 약을 주는 것처럼 단견이나 상견에 대하여 正理를 보여주는 것이요, 진편정이라 함은 병이 나으면 약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단견, 상견이 없어지고 정리마저 인정할 것 없이 이제 비편비정의 경지를 말한 것이다. 이는 곧 정반합의 가치론적 편증법의 전개라 하겠다. 吉藏의 삼론종현의에는 이러한 원리에서 파사현정을 구체적으로 설파하였다. 즉 파사에서는 첫째로 外道를 ?하고, 둘째로 成實을 排하고, 셋째로 大執을 呵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①외도라함은 육파철학의 하나인 교론파(Vaisㆍsika)를 말한 것이요 ②毘曇이라 함은 아공의 理는 알지만 유부종으로서 三世實有 法體恒有를 주장하는 법집가를 말한 것이요 ③成實이라함은 비담에서 일보를 더 나아가 아공법공을 주장하지만 도리어 假取空에 墮하여 그 소설이 미진하다는 것이요, ④大執이라함은 일부 대승가들이 말로는 대승이라 하지만 심행은 무소득의 理를 상실하고 도리어 소유득에 주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나아가서 顯正으로 말하면 그 범위가 넓겠지만 특히 明人正과 顯法正의 두 가지를 거시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파사즉현정이라고 하지만 여기에 이른바 人正은 용수 자신을 말한 것이요, 法正은 삼론의 대종지를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정각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삼론의 파사현정은 가치론적 변증법의 구현이라 하겠다. 즉 유로써 그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함을 정이요, 무로써 이에 대하면 반이요, 이 양변을 지양하여 현정을 이룩함은 곧 합으로 되는 것이다. 용수는 파사현정의 방도로써 眞俗二諦로 나섰다. 그의 중론 사체품에 의하면 『제불은 이체에 의하여 중생에게 법설하였나니 1은 世俗체요, 2는 第一義체니라. 만약 이 이체를 분간하지 못하면 불법의 진의를 알지 못하리라』하였다. 또 지도론에도 『불법 중에는 이체가 있으니 1은 世체요, 2는 第一義체니라(권38)』하였다. 삼론종에서는 이체를 約敎와 約理의 2종으로 하였으니, 약교의 이체라 함은 능화주의 설교에 속체와 제일의체의 구분이 있다는 것이요, 약리의 이체라 함은 이체를 객관화하여 所觀所證의 理로 보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용수의 본의는 약교의 이체설에 있다는 것이 통설인가 한다. 여기에서 속체와 진체를 아울러 보는 점은 불교의 현대적 의의를 새롭게 한다. 즉 진속 이체는 일체불이의 관계이니 반약심경에 이른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함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하겠다. 요컨대, 중도는 한갓 종교윤리 철학에 한하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문화에 통하는 것이다.
<3>
 불교의 초기에 있어서는 승려의 계율을 아주 중시하였다. 이로 인하여 교단은 매우 엄숙하였거만 그 반면에 화기를 상실하고 소승을 면치 못하였다. 이 점에서만 본다면 불교는 마냥 초현실적이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승의 견지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진속이체가 일원화되었으니 현실을 타개하고 국토를 정화함은 지중의 사명이라 하겠다. 上求菩提 下化衆生이야말로 성속일여의 진체라 하겠다. 대승불교가 서장 중국을 거쳐 동진한 것은 새삼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국에서 특히 호국불교로서 특색을 나타냈다. 처음으로 전해 왔을 때 국왕을 비롯하여 중신의 숭앙으로 널리 보급되었으며 금광명경, 법화경, 인왕경 등 호국경전이 숭상되었다. 이에 따라 대덕, 왕사, 국사로 칭호하였고, 불사를 건립하여 민심을 작흥하고 국력을 진작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불교를 거의 국교로 삼을 정도였거니와 북방의 계단이 내침하였을 때 불력을 증강하고자 대장경판을 번각하였고 몽고군의 침략에 대비하여 팔만대장경을 간행하였음은 사상에 이미 저명한 일이다. 고려말기에 전래한 성리학으로 인하여 조선조에는 흥유배불의 국책이었기에 불교는 산사로 은퇴하였다. 그러나 일단 국난을 당하여는 불승은 이를 좌시하고 있지 않았다. 선조조의 임진위란을 당하여 서산대사 휴정과 서명 대사 유정은 승병을 일으키어 지대한 전공을 이루었다. 여기에 호국이라 함은 다만 전시 대비를 말한 것만은 아니다. 호국은 바로 애국의 일단이요, 현하의 한국민으로서는 북위 공산도배의 남침에 대한 난국에 처하여 총화단결을 요망하고 있다. 국민총화란 모든 대립을 극복하여 일치단결을 이룩하는 일이다. 동서냉정의 화해를 비롯하여 남북화평은 바야흐로 화쟁을 요망하여 마지않는다. 화쟁은 어디까지나 대립의 이변을 초극하는 일이니 이는 곧 중도의 구현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불교사상에는 이러한 화합의 사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불교의 율종에는 비구들이 일으키는 사쟁이 중시되었다. 그것은 바로 言諍, ?諍, 非諍, 專諍이었다. 언쟁은 교리에 대하여 시비를 판가름함이요, 멱쟁은 비구들의 허물을 들추어내 없애려고 하는 것이요, 비쟁은 비구들이 죄를 범하고도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때 그 죄상의 여부를 의론하는 데에 생기는 것이요, 사쟁은 비구가 수계 또는 참회하는 작법에 대하여 이를 평론할 때에 생기는 논쟁을 말한다. 이제 대승은 이러한 쟁을 화해하는 데에 큰 뜻이 있을 것이다. 삼론종은 대승불교의 중시하는 교파거니와 동양에 있어서는 한국의 대덕이 여기에 기여한바 컸으니 그것은 곧 고구려의 승랑에서 시작하였다. 승랑은 중국(당)에 가서 삼론학을 깊이 연구하여 그의 사상은 당나라의 길장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다시 말해서 승랑은 중국 삼론종의 선도자라 할 만하다. 그리고 한국 삼론종의 개조로 되었다. 승랑은 중론을 二諦合明中道라 했는데 진속이체를 종합하는 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정반합의 변증법을 철저히 하여 不二는 곧 합이니 이를 世諦로 삼고 그 위를 넘어서는 非不二를 眞諦로 삼았다. 나아가서 불이중도를 이체의 體라하고 진속이체를 用이라 하여 체용으로써 중도를 전개하였다. 신라의 고승 원측이 또한 당나라에 가서 이름을 떨쳤는데 그는 대승의 奧義에 투철하여 종파에 구애됨이 없이 有空 양종을 부합하고 중도를 창달하였다. 그는 유식중도를 기초로 하는 법상종에 대하여 중국의 고승 현장과 의기 상통하였고 나아가서 반약심경과의 종합을 성취하였다. 법상종에 있어서는 일체만법이 阿梨耶識의의 변한 것으로서 비유비공의 중도라 한다. 즉 事, 理, 迷, 悟 등 일체의 법이 遍計所執性 依他起性 圓成實性의 三性에서 벗어나지 않는다하고 이 위에 有, 空, 中의 세 가지 관찰을 한다. 이제 편계는 공이요, 의타와 원성은 유인데, 편계를 고집하는 법은 모두 허망한 것이요, 실유한 법이 아니므로 이를 情有理無라고 한다. 이렇듯이 삼성에 대하여 비유비공의 중도라는 관찰을 근거로 하는 점에서 三性對望中道라 하고 一法中道라고도 하여 법상종을 唯識中道宗이라고 하게 되었는데 원측은 필경 이러한 유식중도에 반약론을 가미한 것이다. 한국불교사상에 뛰어난 이름을 떨친 신라의 대사 원효는 화쟁론으로써 중도를 크게 일으키었다. 그 당시 교리에 중론이 생겨 갑론을박으로 종단의 분파가 자못 심각하였다. 여기에서 원효는 대립된 제가의 이론을 화합하여 후세에 대성화쟁국사로 추정되었다. 원효는 백가의 이쟁을 화하여 二門의 동귀로 합하였다. 여기에 이문이라 함은 生起의 문과 歸原의 문을 말한 것이다. 그것은 곧 모든 모순대립의 이문을 통합하여 중정을 이룩하였으니 가치론적 변증법의 성취임에 다름이 아니다. 그의 십문화쟁론은 화쟁통교의 중도일 뿐 아니라 국민총화의 정도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동서냉전은 화해의 영향을 달성하고 있으며 한반도에는 남북의 대화로 조국통일을 요망하고 있다. 그런 중에도 북한 공산도당은 무력남침을 기도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은 이에 대비하여 국민의 총화단결이 절실하게 되었다. 여기에 화쟁의 중도는 큰 의의를 가진 것이요, 한갓 불교도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경종을 울리는 정도라 하겠다. 이로써 나의 지론인 가치론적 변증법의 성과를 거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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