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해질 명동

 서울의 서울이라 불리는 「명동」에 두 가지 보물이 있다. 「예술극장」과 「명동성당」이다. 「명동성당」은 내가 직접 신앙하는 종교의 교당은 아니지만 사람의 물결이 가장 거세게 파도치는 곳에서 무언의 설교를 담당해 주고 있고 「예술극장」은 순수예술을 지켜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적자 속에서도 정통종합예술을 지켜나가기 위하여 공연되는 연극무대는 예술극장의 공로였다. 그러한 극장이 연말로 문을 닫는다하니 그 무대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한결 새롭게 생각난다. 재작년에 몰리에르의 작품 「사랑과 위선의 흥정」이란 연극도 이 무대에서 보았다. 이 작품은 루이14세 당시의 사회를 압축해서 표현한 것이다. 특히 1660년대 전 프랑스를 석권했던 성체수도회(聖體修道會)의 회포에 대한 묘사여서 나처럼 한 종단의 조직원이 되어있는 사람에겐 큰 의미를 주었다. 도덕성을 가장한 탐욕에 현혹된 채 할아버지 수염 같은 권위만을 내세우는 무모와 횡포가 악순환하는 속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독특한 인간성을 나타낸다. 횡포의 두려움에 굴복해 버리고 강요당한 애욕에 무릎을 꿇어버리고 그래서 복종과 자포자기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좌절당한 자들끼리 내분이 되어 서로 싸움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있고 모순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망동을 일삼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 틈을 타서 공무집행을 내세우면서 탐욕과 비열한 야합을 하는 이가 있고 또 현실문제와는 구체적인 상응성이 없는 자신의 말씀에 집착되어 열을 올리는 이가 있다. 3백년 전에 쓰여진 이 작품이 오늘에도 새롭게 감동을 주었다. 시대를 초월한 감동과 타당성이 있다면 명작임에 분명하다. 결국 해결의 열쇠는 지혜를 솟게하는 일이었다. 모든 일은 건전한 상식이 앞서야 되고 대립사회는 서민적 중간매체의 역할을 필요로 한다는 결론을 얻는 지혜로 해결의 열쇠를 찾아준 무대였다. 이따금 세기를 초월한 감동을 주던 예술극장이 없어지는 명동! 생각할수록 씁쓸해질 것 같다. 명동성당이 있다 해도….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