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지드」작 좁은문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門)은 좁아

나는 한동안 「앙드레 지드」작품에 열중 할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1909년에 발표된 「좁은문」을 읽고는 나대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이 작품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은 인간적 행복을 희생하면서까지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프로테스탄트」적인 이상주의와의 갈등이다.
주인공 「알리싸」와 「제로움」은 외사촌 남매. 「알리싸」는 「제로움」보다 두 살 위이며 우수를 머금은 미소, 크게 원을 그리고 있는 속눈썹이 무엇인가 묻고 싶은 듯한 또는 누구인가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분을 드러내고 있었다.
청교도인 「제로옴」이 교회에서 「알라싸」와 함께 들은 성서의 이야기는 그 후 그를 「알리싸」에로 사랑을 이끄는 길잡이가 되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내가 그 도문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제로옴」은 생각하였다. 덕과 행복은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그가 장래 구하는 것은 행복 그 자체가 아니고 그에 이르는 부단한 노력이라는 생각이 이때부터 「제로옴」의 사랑을 밑받침 하는 하나의 규율 같은 것으로 되었다.
「파리」에서 공부하고 있는 「제로옴」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알리싸」는 그에게 있어 값비싼 진주였다. 방학을 「알리싸」곁에서 즐긴 「제로옴」은 「파리」로 가기 전날 「알리싸」에게 결혼할 약속을 요구한다. 「알리싸」는 『어째서 지금 이대로의 상태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들은 이대로 행복한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오랫동안 「제로옴」은 「알리싸」와 만나지를 않고 있었다. 「제로옴」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 「알리싸」. 성서의 가르침대로 「좁은문」을 지나가고자 한다. 그리하여 「제로옴」에 대한 사랑을 단념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다.
그러나 「알리싸」는 세상 만물을 「제로옴」을 통해서가 아니고는 볼 수가 없다. 하나님의 사랑도 「제로옴」을 생각하지 않고는 무의미한 것임을 안다. 「알리싸」는 자기의 정열을 떠나 청결하게 되기 위해, 자기 주위에서 「제로옴」을 생각나게 하는 모든 물건을 없애버리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한다.
결국 이 싸움은 정신적인 피로 끝에 그녀를 마침내 죽음으로 이끌게 된다. 그리고 몇 권의 일기가 「제로옴」에게 남겨졌다. 『「제로옴」을 신에게 이끈 「알리싸」에의 사랑이, 지금은 그를 신으로부터 떨어지게 하고 있다.』라고 「알리싸」는 일기에 적어 놓고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길은 좁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된 「쥴리에뜨」(「알리싸」의 여동생)를 「제로옴」은 찾았다.
일생을 두고 결혼하지 않을 작정이냐고 묻는 「쥴리에뜨」에게 그는 『「알리싸」이외의 여자에게는 사랑하고 있는 시늉밖에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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