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전주교당 교무>

 자기의 그림자를 보고 그 그림자의 실체는 자기라고 생각하여 본 일이 있습니까? 땅 속에서는 시체가 썩고 있는데 그 무덤에선 파란 잔디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까? 우리는 진실의 실체와 거짓의 그림자를 분별할 수 있는 인생이어야겠습니다. 또 속은 썩어 있고 겉만 회칠된 인격을 분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거짓의 그림자와 회칠된 인격을 알 수 없는 사람은 자기의 길을 바로 볼 수 없으므로 바로 걸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국민 중에 하나라도 진인이 있으면 알맹이가 있는 나라요, 만일 진인이 하나도 없으면 껍질만 있는 나라이니라』고 대산종법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진실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내가 속해 있는 단체나 기관은 진실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나는 얼마나 진실 되게 하려고 노력 하였는가』 저는 『개인이나 단체나 모든 일의 근본이 되는 진실유무에 따라 그 개인이나 기관의 성패가 달려 있다』라는 작은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진실이란 소박한 천진심입니다. 잡이 섞이지 않은 순수함과 표리가 같은 행동입니다. 위장된 사랑이 활개를 치고, 자기 것, 우리의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혼합된 혼탁한 세상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진실을 먼 곳에서 찾지 맙시다. 내가 지금 말하고 듣고 생각하는 것 등이 바로 진실 되게 합시다. 진실 속에는 원망, 시기, 질투가 없으며 양보하고 솔선하는 마음과 행동이 있습니다. 소태산대종사께서는 『진인은 마음에 거짓이 없는지라 모든 행사가 다 참으로 나타나고 언제나 마음이 발라서 삿됨이 없다』<요훈품 28장>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서구 동화하나를 기억합시다. 국왕이 내린 쇳가루를 꽃씨로 믿고 정성스레 심고, 보살피며 싹이 돋아 예쁜 꽃이 피길 기다리던 계교 없는 소녀는 결국 꽃도 피지 아니한 화분으로 상금을 탔으나 상금을 타기위해 아름다운 꽃씨를 구해 다시 길러 예쁜 꽃을 피운 사람들은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인들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생활이 괴리되지 아니하고 생활 속에서 신앙을 가질 수 있고 신앙으로 더욱 생활을 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마음의 진실」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저는 평소 생활하면서 머리에는 지식<知>, 가슴에는 양심<眞>, 손에는 기술<術>의 삼자를 잘 갖춘 사람이 조화된 인간이라 생각하며 이렇게 되길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이 셋 중에서 지식이나 기술은 양심을 바탕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이란 우리에게 고리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실의 고리」로 법신불과 나, 사회와 나, 타인과 나와의 관계를 맺어야겠습니다. 이 진실의 고리가 하나라도 틈이 가리워진 채 거짓으로 맺어졌거나 잡이 섞이었을 때 그 관계는 튼튼할 수 없을 것이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 진실의 고리로 우리 주위가 전부 맺어질 때 우리는 어느 때 어느 곳을 당해도 진실의 마음이 떠나지 않을 것이며 진실의 생활이 될 것입니다. 이 마음과 생활은 곧 처처불상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생활이며 사사불공의 행위로 살아가는 복락의 생활이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진리에의 진실을 갖기 위한 것으로 자기의 진실을 회복하는 것은 곧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되는 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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