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서울교당 출장 시 주산종사 「중앙」앞줄 왼편 응산종사, 오른편 공산 정사, 뒷줄 왼편 박광진, 이건춘>
대종사님 열반 직수, 허허로운 새 회상의 여명기에 찬란히 빛을 발하는 거룩한 두 큰 별이 혜명의 등불을 새벽하늘 드높이 밝혀주고 계시었으니 그 이름 정산종사와 주산종사 형제분이시었다.
14세 동진(童進)으로 출가하시어 『헌심영부(獻心靈父) 허신사계(許身斯界) 상수법륜(常隨法輪) 영전불휴(永轉不休)』란 일대 서원송을 오려 즉석에서 사부님의 심허를 받으시었고. 봉래정사 봉시(奉侍), 익산본관 공양, 서울교당 교무, 월말통신 주간을 거쳐 약관으로 수위단에 입단하시었고, 사부님 서랑(壻郞) 되신 후, 총부와 영산을 오르내리시며 모든 중직을 차례로 역임하시고 상봉 중화 하솔에 열과 성을 다시신 법호 그대로 주산정신의 화산 주산종사!
한 끼 밥을 끊을지언정, 좌선은 빼지 말자 하시며 앞장서서 노소를 선방으로 불러들이시고 한 번 선좌에 앉으시면 두 시간 계속 정진에 미동도 않으시며 입정하시었다.
「건곤 독보적 기상, 살활(殺活) 자재(自在)적 수단」이란 서제를 즐겨 써 넣어 수시로 그리시던 형면(炯眠)의 달마상을 그 어른 심상의 자화상인양 했고 웅혼 양양하신 필법으로 수많은 선구를 휘호하시며 「직양(直養)」이란 아호로 낙관하신 것은 맹자의 이르신바 지대지강한 호연지기를 직양이무해(直養而無害)하여 천지간에 차게 하신 그 어른 심독희(心獨喜) 자부의 표상이었다.
대종사 열반하시매 그 망극한 비통을 억누르시며 「추모 속에 일하자.」 「사명(師命)을 욕되게 말자.」 상하를 격려하여 일깨우셨고 민족이 해방되매 구호 사업, 청년 운동, 문화 활동을 병진, 교단의 대약진을 염원하시며 동분서주하시다가 구호 동포의 병이 옮아 거연히 순직하신 육신 보살 주산종사!
「진리는 고금을 통하여 변함이 없고 시방을 두루  도 다름이 없으니 우리는 이 진리를 체 받아서 진리적 생활을 하자.」 40도를 넘는 고열에 의연히 정좌하시어 낭랑하게 읊어주신 최후의 법어, 이는 40세로 원성(圓成)하신 원정사 주산종사의 거룩하게 끼쳐주신 게송이었다.
주산종사 천화(遷化)하신 지 어언 34년! 불초한 우리 후학은 이제야 이 문집을 엮어 곧 발간된다. 종사 제일이시니 문집도 당연히 맨 먼저 내야 할 것을 뜻 아니게 순서가 바뀌었으나 종법사어가 정식으로 편찬 간행될 때까지 우리는 우선 이 문집으로 주산정사를 다시 뵈옵고 주산 정신을 새로이 이어 받는 보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선진문집 추모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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