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상황은 위기적 성격
과거를 심판, 미래지향적 의지 길러
종교는 내 자신 속에서 찾고

나는 때때로 『선생님, 종교란 무엇입니까』 또는 『선생님은 무엇을 믿습니까.』하는 질문을 받는다. 이 두 물음에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할 수 있었던 때가 없었다. 자기의 신앙을 풀어서 자기 자신이 의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무엇인가를 믿는 것 같고 남보다 뛰어나게 종교란 무엇이다고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때로는 잘 믿는다는 사람의 언행을 듣고 보고 혀를 차기도 한다. 내 나름대로 믿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배워온 종교지식이 작용하여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생물학적 존재로서 「델비」신(神)이 『너 자신을 알라.』고 신전 밖에 내어던져진 몸으로서 살고 있다.
한 순간순간에 기본적인 물질이 분해하고 결합하면서 약 천 가지 종류의 반응을 일으켜 잘 조화되어서 살고 있다. 순간순간에 기본적인 물질이 분해하고 결합하면서 천 가지 종류의 반응을 일으켜 잘 조화되는 몸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런 조화와 함께 내가 있는 주변도 조화의 질서세계이다. 그 몸과 그 주변에서 나는 내일 극히 제한된 일이나 행동범위 안에서 극히 제한된 관심을 가지고 궤도 안에서 달리는 생존을 되풀이 하면서 산다. 이런 되풀이 되는 것에 습관이 되어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렇게 되리라고 전제하면서 그날그날을 살아간다. 이런 것은 확실히 생존적인 것이다. 생존은 사람에게만 아니라 모든 생물에서도 영위된다. 그러나 사람은 되풀이되는 생존적 질서 속에서도 신으로부터 내어던져진 어떤 목적을 향해서 생활한다. 그러나 나도 생존 속에서 생활한다. 때로는 생존과 생활이 서로 잘 조화되어 모순이 없는 하루가 닥쳐오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모순되어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지루한 하루가 지나가기도 한다. 나는 생물체로서의 질서와 목적을 추구하는 가치의 질서가 통일된 하루와 그렇게 못한 하루 속에 던져져 있는 것이다. 생존과 생활의 두 질서는 조화 통일되지 않고 분열되고 있다. 여기서 나는 분열의 압박에 인한 불안과 위기에 놓이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위기란 말은 희랍어로서는 분리와 심판을 뜻한다고 한다. 사람은 과거로부터 분리하고 과거를 심판하고 장래를 향해서 새로운 창조를 지향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참으로 위기적 존재이다. 더욱이 현재는 과거 시대로부터 분리한 것이고 지난 시대로부터 분리한 것이고 지난 시대를 심판하는 것으로서 위기적이다. 따라서 신전에서 내어던져진 나의 존재 자체가 위기적 존재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역사적 상황도 위기적 성격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내가 있는 곳과 역사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위기가 있다. 그러므로 이 위기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도 짊어지워진 것이다. 위기는 비일상적인 일이 일어난 그 때나 그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언제나 나와 더불어 있는 것이라 하겠다.
나는 위기 속에서 갈기갈기 찢겨서 분열 속에서 나 자신을 잃다가도 신전(神殿) 밖에 던져진 나 자신을 되찾기도 한다. 되찾아진 나는 분열과 심판을 거친 나라고 믿는다. 분열과 심판에서 새로히 창조된 나라고 생각한다. 그 나는 물론 오래 계속되지는 못한다. 어느 시간에 또 다시 위기적 존재가 된다. 그래도 그 나는 위기적 상황을 극복하고 분열에서 통일된 나인 것이니 일상적인 나가 아니라 아마 「델비」신의 『저 자신을 알라.』는 말의 「너」인 나는 위기적 존재에서 순응의 존재에로 옮겨갈 수 있는 존재일 것이다. 순응이란 생존의 위기를 넘어선 비일상적인 것에 대한 순응이다.
나는 그런 순응에서 종교와 만난다. 그 종교의 만남(상봉)에서 나는 몇 가지 비일상적인 요구를 외쳐본다.
나는 사람들이 바란 것을 바라고 싶지 않다.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들은 물질이 풍부해서 생활이 윤택해지고 탈 없이 남보다 오래 살기 위해 신령들에게 빌었다. 그래서 그 신령들은 이제 다 주고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을 바라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이 구하여 달성된 것을 구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이 성인 성자가 되고자 착해지고 성실해지고 덕을 쌓으려고 고행도 쌓고 갖가지 수업도 했다. 구하면 주겠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구했다. 구하면 주었으니 거기에도 남은 것이란 있을 리가 없고 내가 구해보아도 그 범주 안에서나 그 이하에서 구하는 밖에 안될 것이다.
나는 나에게서 밖에 얻을 수 없는 것을 찾으려고 한다.
모든 사람이 구해서 얻었고, 주신 분도 자기에서 남은 것을 갖고 있지 아니하니 별 도리가 없다. 바라고 싶지도 않고 구하기도 싫다 내 속에서 내가 던져진 그 무엇인가를 찾으련다. 누가 무엇이라고 말리더라도, 나 같이 우둔하고 복을 주는 문턱으로 발을 옮기기도 싫고 움직이기도 싫은 사람은 가만히 제자리에 앉아서 위아래나 또는 좌우로 자기 속의 구석구석에서 무엇이가를 찾을 수밖에 없으리라.
<서울대 문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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