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원 ③
분(忿)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하려고 하면 못 될 일 없고
나태심 퇴굴심 현애상 등 전진의 방해 부수는 무기

신(信)에는 정신(正信)과 미신(迷信)이 있다. 정신은 진리에 입각한 사실적인 신앙으로서 인류를 정도로 인도하는 바른 믿음이라면 미신은 비사실적이고 비진리적인 신앙으로서 사도(邪道)로 인도하는 그릇된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정신은 안으로 자성지보(自性之寶)인 불법승을 확실히 믿고 일체의 심신작용을 이에 표준삼는 자력신과 밖으로 진리와 법과 스승을 믿고 사실적으로 귀의하는 타력신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력신에서 자력신으로 지향하고 자력신은 다시 타력신으로 연결되어 마침내 자· 타력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완전한 신이 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의 영원한 귀의처인 진리와 정법과 정사에 튼튼한 신앙의 줄을 대고 나도 불성이 있으니 이룰 수 있다는 굳은 신념으로 나아가야 수양공부에도 정진이 되고 의두 연마도 지속이 되며 계문실행도 잘 되어 삼대력을 갖춘 부처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밖으로 나타난 외형이 비록 가난하다 할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속 깊숙이 숨어있는 불성을 발견하여 삼학공부로써 자신을 키워나가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분(忿)
교전에 「분(忿)은 용장한 전진심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 권면하고 촉진하는 원동력이니라.」고 밝혀있다.
만사 추진의 능력이 되는 생생한 의욕 발발한 기운 전진하는 마음이 분이다. 이 세상 모든 일이 하면 된다는 굳은 신념과 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의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본다. 기필코 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으로 용감하게 밀고 나가는 분발심은 일을 추진하는 활력소라 볼 수 있다.
분발심이 없으면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다가 간혹 엄습해오는 순역경계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니 전진을 방해하는 나태심과 퇴굴심의 마장에 걸려 마침내 중단이 되고야 만다. 그러므로 분발심은 모든 경계에 굴하지 않는 칠전팔기의 용력으로서 모든 일을 추진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분(忿)에는 정분(正忿)과 객분(客忿)이 있다. 정분은 정당한 일에 굳은 결심으로 밀고 나아가는 용맹정진 심이오, 객분은 부당한 일에 철없이 덤벼드는 혈기의 용(勇)을 말한다. ① 석가세존의 보리수하 결심 ② 구인 선배의 사무여한 결심 ③ 육조대사의 인유남북(人有南北)이나 하유불성차별호(何有佛性差別乎)가 정분이라면 음주 잡기 쟁투 등 부당한 경우에 상대심이나 투쟁심이나 허욕심이 바탕이 되어 나오는 분심이나 일시적인 흥분과 감정에서 나오는 분심은 모두가 객분이라 할 수 있다. 중생은 외부의 자극을 받는다든지 특별한 기연을 만나게 될 때 발분하게 되나 성현은 숙세에 세운 서원과 중생 구제의 원력으로 발분하게 된다.
과거 부처님께서 보리수하에서 정진하실 때 만일 성도하지 못하면 이 자리를 물러나지 아니하리라는 비장한 각오와 대종사님께서 성도이전에 내일을 어찌할꼬 하고 생사를 걸고 바친 구도심은 숙세의 원력이니 성불의 결실을 거두게 한 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수도인은 삼독오욕에서 해탈하려는 분심 생사를 초월하고 업력을 돌파하려는 분심 계정혜 삼대력을 얻어야겠다는 분심을 가져야 할 것이니 이 분발심이 성불의 촉진제가 되고 권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신이 지극할 때 분심이 일어난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철저히 믿고 부처는 누구며 나는 누구냐 부처와 나는 본성 자리에 조금도 다름이 없다. 나에게 불성이 있으니 각득하면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서 죽기로써 힘차게 밀고 나갈 때 우리의 대원은 성취된다.
심중에 성불 못한 한이 가득 차 있어야 큰 분발심이 생기며 큰 분발심이 생길 때 발분망식(發憤忘食) 살신성인(殺身成仁) 위법망구(爲法忘軀)의 대분지가 서 진다. 대분지가 나태심 퇴굴심 현애상 등 전진을 방해하는 마구니를 물리치는 무기가 되고 중근의 고비를 넘기는 무기가 된다.
정산종사 법어에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하려고 하면 못될 일이 없고 안 하려고 하면 되는 것이 없으니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각성 아래 법강항마위까지는 부처는 누구며 나는 누구냐 하는 큰 발분을 가지고 기운 돋우며 정진해야 하고 법강항마위부터는 중생과 부처가 본래 하나라도 달관을 가지고 모든 상을 떼고 티 없애는 공부를 하라.」고 하시었다.
조용히 정좌하고 자신들이 살아온 인생을 거울에 비춰보면 우리는 밖으로 물질과 영달을 얻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을 했지만 자신의 인격 성숙을 위해 정진할 때는 극히 드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인간은 자아를 상실하고 점점 물질화되고 기계화가 되어가는가 보다.
<교정원 공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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