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함께 들어 있어서 이른바 「가정의 달」이라 한다. 어린이 날과 어버이날의 행사를 치르고 이제 5월을 보내면서 여기에 그 소회의 한 가닥이나마 피력하고자 한다.
「가정은 행복의 보금자리」라는 말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다. 사람이 사회적으로 살아가는 근본이 되는 바탕이 가정이기 때문이요, 그 꿈이 또한 「행복」이라는 본질적 요구이기에 그런 것이리라. 사람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그 나름의 「행복」을 바라며 추구한다. 누구나 바라고 추구하는 행복은 어떤 것인가? 저마다 바라고 추구하는 행복의 문제만큼 각양각색인 것도 없어서 그 뜻을 한 마디로 단정하기는 매우 어려운 노릇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실현 불가능한 공상이라는 것도 바로 여기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오늘날 행복의 조건을 조성하는 두드러진 경향은 자못 노골화하여 금력과 권력이면 다라는 것, 말하자면 돈과 권세가 「행복의 조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서 반드시 딛고 넘어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돈과 권세를 차지하는 것만이 행복의 첩경이라고 누구나 단정하게끔 된 작금의 시대적 사회적 풍조이다. 요즈음의 노사분규 청소년· 노인문제· 사회의 온갖 부조리 현상 교육의 위기 이로 인한 가지가지 비인간화의 사태가 거의 한결같이 이러한 풍조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라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을 맞아 그의 고유한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형식적인 행사를 갖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보다는 근원적으로 뉘우치고 다시 반성하여 더욱 새로운 각성과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계기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 산업화의 거센 바람이 급기야는 우리네 가족제도와 가정의 해체 위기를 물러오는 현상에 대하여 우리들은 그 원인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를 바르게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이에 대처하는 슬기와 용기를 발휘하여 사회적 변동의 와중에 휘말려드는 부작용을 저마다 사는 그 가정에서부터 막아 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과업이 아닐 수 없다.
우리네 가정의 직면한 문제는 새 시대의 새 가정으로 넘어서는 새로운 「제가(齊家)」의 기틀에서 그 해결의 열쇠를 찾아야 한다. 아동복리법이나 청소년 선도법, 노인복지법 등을 보다 효율적으로 능동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일시적인 방편이 될 수는 있지만, 보다 궁극적으로 다가서주지 않으면 안 된다. 금세기가 안고 있는 이 세기말적 위기 풍조는 한 마디로 말하여 모든 인간 가치의 상실 나아가서는 인류의 보편적인 공동 이상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린데 그 원인이 있다. 인간의 가치와 그의 보편적인 이상을 찾아주는 일이 먼저 그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당위에 속하는 작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정 한 집단 한 사회의 지도자적인 기성세대부터가 스스로 자제하고 뉘우치며 솔선수범으로써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애정을 베풀어주고 그 자신이 몸소 감사와 신뢰의산 표상이 되어주어야 한다. 저의 인격을 인증하여주고 저의 심정을 이해하여주고 좀 더 가까이 다가서서 어루만져주고 감싸주고 끝까지 책임을 져줄 때 비로소 서로의 인간적인 마음 그 숨결은 한 길로 통하여 평정과 안정을 찾게 되고 생기와 조화를 누리게 된다.
여기에서부터 이른바 인간성 회복이 가능하게 되고 인간 가치에 대한 확신이 서 지게 된다. 희생과 봉공 창조에 대한 즐거움도 역시 감사와 신뢰의 인간적인 산 실체에서 저절로 울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은 돈이나 권세로써는 사지 못하는 것이며 인간의 모든 가치의 총체인 행복의 꿈을 북돋아주고 길러주기 위하여 가정은 마땅히 그의 보금자리가 되어서 마침내는 인간의 마음 인간의 가치 인간의 이상이 여기에서 살아나서 그 믿음 그 사랑이 마침내는 이웃과 사회를 확충하는 생명력 그것으로 뻗어나야 한다. 그래서 또한 가정의 달을 모름지기 새로운 제가(齊家)의 몸가짐으로부터 반성하고 자각하는 그러한 「출발」이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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