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께서 탄생한 생가가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된다고 한다. 그동안 성탄지를 참배할 때면 둥그러운 돌무더기만 쌓아놓은 집 터 앞에서 항상 허전함과 송구스러움이 앞섰는데, 이번 수원교당 「조대진」교도회장의 발원으로 복원공사를 시작하였다 한다. 세인이 보기에는 대단치 않은 초가삼간 일는지 모르나 뜻을 소중하게 아는 이에게는 이보다 반가운 일이 없을 것 같다. 바라는 바로는 대종사님의 체취와 수택이 어린 가옥과 세간들이 보존되어 지금에 전한다면 더 없이 소중한 사적물이 되겠지만 그것은 이미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 당시를 실증할 수 있는 생존자의 고증으로 원형 복원이 가능하다 하니 아쉬운 중에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대종사께서 대각 전에 살으셨던 집은 탄생가 외에도 11세에 이사하여 살으신 「구호동」의 집과 입정· 고행 중에 거처하신 「귀영바위」와 대각 당시의 「노루목」에 있던 집 등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모두 헐리거나 옮겨져 지금은 집터만 남아있고 그 중 대각지에는 「만고일월」비를 세워 기념하고 있다.
영산성지 사업회에서는 다른 사적지에도 적합한 조형물을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부지 확보와 조형물의 내용, 그리고 사업자금의 확보 등에 부심해온 줄로 알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시급하게 느껴져 오던 사업이 탄생지에 대한 장엄사업이라고 본다. 이번 「조대진」씨의 특별한 원을 계기로 성지사업회에서는 사적관리위원회를 거쳐 충실한 원형의 보존을 결정하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다.
이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소실된 생가를 복원한다는 것은 고증에 의한다고는 해도 모조에 불과하여 사실적 가치가 없으니 미관상 품위도 없고 별반 예술성도 없는 초가를 재현하는 것보다는 탑을 세우거나 기념관을 건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이견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일리(一理) 있는 의견이다.
그러나 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이나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를 생각해 볼 때, 또 선인들의 체취 어린 가옥들을 보존하기 위하여 많은 재정을 기울이는 서양의 경우를 참고해 볼 때 사실을 사실대로 보존하려는 노력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복원하려는 집이 비록 당시의 실물은 아니라고는 하나 다행히 대종사님과 어린 시절을 같이 지낸 2년 연하의 이종제인 「최복경」옹의 고증과 당시 이 지역의 농가 형태를 참고하여 그 때의 건축 양식에 의하여 지어진다면 충분히 사실적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또한 당시의 초가가 지금에 있어서는 궁색해 보일는지 모르나 시간이 지날수록 성탄지를 찾는 사람에게는 대종사님을 추념하는 풍부한 분위기를 제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종사님께서 궁벽한 산촌의 평범한 농가를 택하여 오신 보이지 않는 깊은 뜻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당시를 직접 보고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은 옛날의 모습이 평범하고 궁색하여 가치 없는 것으로 느낄는지 모르나 문자나 언설로 전할 수밖에 없는 후인들에게는 역사의 사물들이 그처럼 소중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기념 조형물은 가옥 만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나 대각터와 봉래정사터가 이미 비로써 기념이 되었고 귀영바위나 구호동의 집터 역시 가옥을 복원하기에는 지형적 조건이나 성격이 성탄지와 같지는 않다고 볼 때 성탄지 한 곳쯤은 가옥을 복원하는 것이 종합 계획적인 면에서도 타당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성지사업회는 성지장엄에 대한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해 가는 줄 알고 있지만 이런 기회에 다시 한 번 성지장엄에 제1과제가 사적물의 원형보존에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이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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