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부 농장 작황을 돌아보고

추석을 보내고 오래간만에 들에 나가 보았다. 알봉을 지나서 곧장 총부농장(신용· 임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총부 벼농사가 작금(昨今)년간 말이 아니게 실농(失農)을 하였다는 실정을 듣고 한 번 현장을 답사하리라는 데에서 내친걸음이라 애당초 가을을 감상할 만한 어떠한 유연한 심경의 여유라 할 것도 없이 다만 산업원장의 안내를 따라서 작황을 돌아볼 따름이었다.
우리네 같은 사람이 농사 작황을 알아서 무슨 도움이 되랴마는, 동체대비의 마음으로 안타까운 눈길과 아픈 가슴은 매한가지의 느낌일 것이다. 이랑마다 황금물결이 넘실거려야 할 가을 벌판이 추수기에 다달아 도무지 검게 타버린 사색으로 잠겨버렸으니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인위로써는 어쩌지도 못하는 천재지변이라 그런 대로 돌릴 밖에 별다른 도리야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정확하고 치밀한 원인분석만은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며, 이후로 지난 시간이 쓰라린 경험을 충분히 살려서 불시에 닥치는 천재에 만반의 대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금년 농사의 저조 실태는 물론 세계적이고 전국적인 현상이라 한다. 서구 쪽에서는 장기간 한발이 극심했고 동남아 일대는 장마와 홍수가 계속되는 바람에 많은 인명과 농경지 유실의 피해도 적은 것이 아니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수해 냉해 충해 등 겹친 피해로 주곡 생산량이 평년작이 이하로 감수가 예상되고 있는 실정이다. 식량사정은 풍작을 거듭하는 때에 있어서도 오히려 세계적인 부족현상으로 등장되고 있는 문제인데, 가뜩이나 흉작을 겪는 이 마당에서야 더욱 위축되고 긴박해질 것이 뻔한 것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관념이 공업화의 기세에 밀려 근래에는 매우 희박해져 가고 있다. 요즈음 농사를 지어 별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 하지만 농자가 세상의 대본이 되는 것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고 본다. 더구나 인구의 팽창과 식량 위기를 겪는 오늘날의 세계정세를 감안할 때, 이 세상의 대본을 일으켜 세우는 「농업재건」의 일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교단은 초창 이래 농경으로 그 경제적 기반을 다져왔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총부를 비롯하여 수계농원 및 영산의 농장과 최근에는 삼동원의 농지, 만덕산과 완도농원 등 많은 농토를 보유해오고 있지만 그 경영유지의 상태가 아주 전근대적인 것으로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농업경영의 합리화니 농업인력 농업기술의 개발이니 하여 그럴싸한 문제의 제기를 서슴치 않는데, 총부 당국은 형식논리 면에서가 아니라 보다 실질적으로 농업경영의 합리화나 농업인력 농업기술의 개발이 안 되는 심층적 원인을 찾아내어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대책이 세워지고 궁극적이고도 전반적인 자리에서 「농업재건」의 종합계획이 이뤄져 농사에 활기를 더하고 산업경영이 합리적으로 움직여져서 교단에 기여하고 인류 복지에도 참여하는 그러한 계기까지도 구상해주기 바란다. 지금껏 그늘에 묻혀 농사일속에서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이 교단의 얼을 묵묵히 심어주고 있는 농장 농원에서 살고 있는 여러 선배동지 교무의 노고에 대해서는 무어라 위로해야 할 말이 없다.
지금은 한 가을, 애써 부지런히 지은 농사를 거두어 들여야 할 때이다. 농사를 잘 지었다면 거두어들이는 일 또한 헌거롭기 만한 「격양가」이다. 올가을은 「격양가」를 부르며 즐겨할 만한 처지는 못 되는 것 가다. 그러나 만족한 것은 아니지만 지은 만큼은 거둬야 한다. 지은 만큼이다. 더 하고 덜함이 어디 있겠는가? 총부와 삼동원 농원의 농사 등이 거의 전무의 형편인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애쓰고 노력한 대가도 보람도 없이 당무자들로서는 진정 면목이 없는 노릇이기는 하지만 어찌할 것인가? 이 때일수록 진정한 뜻을 알아야 한다. 「전탈(全奪)과 전여(全與)」이다.
이 뜻 모르면 살아날 힘없다. 다시 명년을 바라보면서 회복을 기약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듯 농사를 한 해 실농하면 명년을 기약할 수 있는데, 역사의 법칙은 자연의 순환법칙과는 다르지 아니한가? 그렇다. 실농이다 실물이다 하는 건 시간적으로 보상이 되지만 한 번 잃어버린 인간성, 나의 본연의 얼굴은 언제 회복하는가? 우리들 마음의 양식을 장만하는 것은 진정으로 우리들이 영생을 사는 길이다. 영생을 사는 길이 없이 살리는 길 없다. 이 가을과 더불어 우리들 마음의 양식을 장만하여 가자.
마음의 양식은 하루 이틀 또는 한 철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평상시의 공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평소에 소홀히 하는 마음공부로는 양식이 쌓일 수도 없다. 마음공부는 끊임없어야 한다. 끊임이 없는 데에서 힘이 솟고 영원의 생명으로 뻗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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